2022 국제심포지움 “왜 프랑스는 성평등 모델을 선택했나? 프랑스 성매매경험당사자 활동가와 여성의원에게 듣는다” – 조정민 판사

2022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국제심포지움

왜 프랑스는 성평등 모델을 선택했나? 프랑스 성매매경험당사자 활동가와 여성의원에게 듣는다

전국연대에서는 프랑스 성매매경험당사자 활동가 알렉신 솔리스와 프랑스 성평등 모델법 제정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전 하원의원 모드 올리비에를 초청했습니다. 프랑스는 2016년 성평등 모델법(신근절주의)을 제정한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프랑스의 법 제정 과정과 성매매 실태를 살펴본 후, 한국의 상황을 점검하는 토론을 가졌습니다.

3. 성구매자 처벌의 필요성과 의미 조정민(부산 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 현대사회와성범죄연구회)

조정민 판사는 법원 내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가 다루어지는 방식에 대해 의문과 고민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성매매’ 문제에 집중하여,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라는 공식 조직을 구성해 법원의 많은 이들이 성매매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판매여성을 처벌하는 법률조항은 폐지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성판매여성이 성매매산업 내에 유입·체류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입 이후의 개별적 행위를 포착하여 ‘(자발적인) 성매매’라는 이름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며 더욱이 한국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그 필요에 따라 성매매 산업을 용인·조장하면서 성판매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를 유발·방조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성인간의 자발적 성매매의 경우 비범죄화하자’는 주장 즉, 성판매여성뿐만 아니라 성구매자도 처벌하지 말자는 취지의 주장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이에 대하여 성구매자를 처벌할 필요성에 대한 저의 의견을 간략히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성매매는 피고인을 기준으로 살폈을 때 전형적 성폭력범죄와의 경계가 매우 불분명합니다.

성폭력시장은 상품화된 여성을 취급하는 단일 시장입니다. 최근의 디지털성범죄 시장은 그 점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성착취물이나 성매매나 거기서 거래되는 물건과 상품 중 하나일 뿐입니다. 법령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법관들의 머릿속에는 성폭력범죄와 성매매범죄가 현저히 다른 범죄이지만 젠더기반폭력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사정이 그러하다면 ‘성매매는 되지만 성폭력은 안돼’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법은 둘의 허용성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이 성폭력 시장에서 성매매는 여성대상 폭력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현저히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처벌에도 불구하고 만연되어 있고 가볍게 여겨지는 성매매를 통해 성구매자들은 ‘여성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를 학습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산다’고 말할 때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흥정’, ‘물색’, ‘선택’, ‘품평’ 등. 이 모든 것들이 시장에 모여 있는 구매자들끼리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마치 정당한 행위인양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2) 폭력을 수반하지 않은 성구매행위라도 성판매여성의 인권침해행위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2000년대 초, 일부 법대 교수들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남성의 유전적 본능 해소와 이를 충족시키는 대가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여성의 의도가 결합하여 성매매 관행이 생겨났다, 성매매처벌법은 남성 욕구를 국가가 관리하고자 하는 “형법 남용”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상대방의 자발적인 동의 하에 성을 구매하기만 했을 뿐이라는 취지에서, 단순 성구매자에게 성매매여성들의 인권착취에 대한 형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두드러집니다. 형법은 책임원칙(‘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까다로운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한국에서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해악이 시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 결과 공익광고에 “불법촬영은 범죄입니다. 보는 순간 당신도 공범입니다.”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나는 보기만 했을 뿐이다’라는 항변을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예를 보면, ‘나는 성구매행위를 했을 뿐이다(그 전후의 인권침해행위는 나와는 무관하다)’라는 항변 역시 시민들의 인식 수준에 따라 그 유효성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매매업계의 현실과 인권침해 현실을 알게 될수록 성구매자들이 ‘나는 매수만 했을 뿐이다’라는 항변할 근거를 상실할 것입니다. 성매매산업이 유지되는 토대는 성구매자들의 수요와 구매행위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이 명백한데도 그를 모르는 양 하는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법적 논의는 사회적, 정책적 논의와 시민들의 법에 대한 담론을 완전히 배제한 채 논리적인 문제로 치환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매매쪽은 디지털 성범죄에 비하여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아동, 청소년이 성을 매도한 경우 성매매피해자로 규정하고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였습니다. 그런데 법률이 개정된 이후 경찰이 아동, 청소년을 성매매보다 형이 더 센 ‘성매매광고죄’로 의율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성매매를 시도하는 청소년들이 SNS에 성구매자를 구하는 게시글을 올리는 것을 성매매 광고행위로 보아 처벌하려는 것입니다. 법률이 명백히 입장을 천명하였음에도 법률만으로는 쉽사리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법의식을 선언하는 법률이 등장한 이후에도 그 실효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모니터링과 감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3) 법률의 내용은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국가의 입장을 표명합니다.

최근 저는 동시대 한국에서 젠더기반폭력에 저항한 연대와 운동이 법률적,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까지도 불법촬영물과 성착취물이 ‘음란물’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거래되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경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직, 간접으로 겪은 ‘디지털네이티브’ 세대의 여성들이 직접 나섰습니다.

‘음란 사이트’ 내 성범죄 모의에 대한 지속적인 신고와 홍보 결과 사이트가 폐쇄되고 주범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이후 디에스오(DSO, Digital Sex Crime Out)가 결성되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하여 시민들과 언론에 알리고, 온라인상 범죄를 모니터링 및 필터링하며,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피해자를 지원하였습니다. 이후 정부가 2018년경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설립하여 영상 삭제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2017. 9. 말경에는 정부 부처 합동으로 최초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이 나왔습니다.

2019년 사회적 충격을 준 N번방 및 박사방 사건의 경우도 대학생들로 알려진 “추적단 불꽃”의 취재에 의해 수사가 개시되었습니다.

일련의 노력에 대해 실제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이 입법되고, 양형기준이 변경되는 등 법적, 제도적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국가는 법률과 재판을 통해 ‘음란물’, ‘야동’이 아니라 ‘성착취물’이고 이를 공유하고, 유포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며 해당행위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로 선언했습니다.

저는 여성들의 자생적 연대와 세력화 과정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면서 결국 그 운동으로 모아진 의지들이 법률에 반영되어 선언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법률은 어느날 국회에서 갑자기 만들어지거나, 법률전문가들의 논리적 추론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변화를 위한 운동과 연대의 노력에 대한 국가의 입장표명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선언과 입장표명이 없다면 진보의 결과물들은 고정되지 아니한 채 부표처럼 떠돌 것입니다.

성매매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국가가 성구매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는 것은 성구매행위가 젠더기반 폭력에 해당하며 모든 시민은 그러한 폭력에 동참하지 아니할 책무를 지님을 선언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저는 오늘 발제해주신 프랑스의 입법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처벌규정이 있었습니다. 이제 금지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인권침해로서 성매매 근절을 위해 처벌법규가 해석되어야 할 때입니다.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의 입법이 성매매 문제에 대해 시민과 사회에 어떤 의사를 표명하는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폐지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4) 나가며

성매매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래 법에 관한 저의 시선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떠한 맥락을 가지는지, 법이 정당하기 위한 토대는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성매매의 현실과 정책, 법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다면 문제 자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은 시민들 스스로 사회와 국가, 인권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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