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유흥과 접대라는 이름으로 착취와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유흥접객원’ 조항 당장 삭제하라!

[성명서]

유흥과 접대라는 이름으로 착취와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유흥접객원’ 조항 당장 삭제하라!

코로나19의 엄청난 전파력에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로 전 국민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료진들의 헌신적 노고에 숙연해지는 2020년의 봄을 지나고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나’ 하나가 아닌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코로나19를 대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전후로 세계는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인류 생존을 위해 실천하고 실현해야 함을 새롭게 깨닫고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또 다른 주요 과제가 된 텔레그램 성착취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착취 문제를 집대성해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연일 쏟아지는 심층 분석과 실태 취재, 보고 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문제를 간과하고 조장해 왔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불법 촬영물로 수익구조를 만든 소라넷과 웹하드 카르텔에 이어 등장한 이 사건은 급기야 만 12살의 성착취 영상 유포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KBS의 2020년 4월 8일 뉴스에 따르면 주로 게임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디스코드’에서 N번방, 박사방 등 텔레그램 아동 성착취물 사건의 피해 영상물 등을 유통시킨 채널 운영자의 절반이 넘는 8명이 미성년자였다.
많은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텔레그램 성착취 관련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학생을 포함해 20대와 10대까지 포함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가해자로 만든 것인가. 그동안의 성착취 사건에 미온적이거나 직접적으로 가담해왔던 수많은 우리 사회 권력자들이 있다. 그들이 스폰서를 만나고, 비즈니스를 한다며 접대를 받아왔던 업소들, ‘삼천궁녀 항시대기’같은 광고판을 걸어두고, 여성들을 경매장의 소처럼 번호를 달아 줄지어 세워놓는 업소들, 바로 룸살롱, 텐프로, 비즈니스클럽이라 불리우는 ‘유흥주점’이다. 숨 쉬듯 일상적으로 이런 행태를 일삼은 우리 사회 권력층은 이러한 성착취 행위를 ‘성공’이라 칭했다. 합법적으로 부녀자 유흥접객원이라 명시하여 성접대를 받아온 기성세대가 있었고, 이들은 유흥접객원인 여성들을 성적 품평의 대상으로, 성적 도구로 취급해왔다. 이를 학습해온 한국사회가 10대마저 성착취의 가해자로 만든 것이다.

서울시는 4월 8일 서울의 유흥업소 2,146개 중 영업중지 권고에도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던 422개 업소에 대해서도 19일까지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강남의 대형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여성 2명이 일본에서 귀국해 확진판정을 받은 남성과 접촉했었고, 이후 이들도 확진 판정을 받으며 나온 조치이다. 문제가 된 유흥주점은 종업원만 110여명에 감염 우려가 발생한 바로 그날 하루 이용 고객만 5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민 모두가 서로의 안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며 종교시설의 예배조차 자제하고 있는 이때에 단 하루 저녁시간에 500여명이 한 업소에 모여든 것이다. 더구나 이 업소는 유흥주점이다.
유흥주점이 어떤 곳인가. 단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노는 곳이 아니다. 유흥주점의 핵심은 ‘유흥접객원’이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2조에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흥주점은 이 유흥종사자를 두거나 유흥시설을 설치할 수 있고 손님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영업이다. 이 법조항에 의거해 룸살롱, 요정, 텐프로 들이 합법적으로 여성들을 유흥접객원으로 두고 성착취적 행태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식품위생법 시행령이라는 법령에 의거 전근대적이고 노골적 성차별 업종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흥업소가 비싼 세금을 내면서도 전국에 그토록 많은 업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성착취적 접대행위를 허용한 결과이다. 일제강점기 ‘요정’이 수출주도 경제성장시기 주요 수입국인 일본의 남성들을 접대하기 위해 ‘기생관광’을 만들고, 그것이 2020년 대한민국의 추악한 민낯으로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유흥접객원은 단란주점과 노래방, 보도방에서 ‘도우미’로 변신하여 어디든 공급되어진다.

유흥주점의 ‘접대’장면은 수시로 영화, 드라마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보여지며, 모두가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다. 몇 그룹씩 여성들을 나누어 들여보내 손님들이 자신을 접대할 접객원 여성을 고르고,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온갖 착취적 행위를 한다. 가벼운 스킨쉽에서 유사성교행위에 이르기까지 입에 담기도 힘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2차 성매매는 당연한 코스가 된다. 강남의 텐프로는 아니라고 한다. 텐프로에서 여성들과 2차 나가는 것과, ‘나쁜 손장난’ 등이 금지 되어 있다면 그건 그 업소의 규칙일 뿐이다. 그리고 이건 그 외의 업소는 다 그렇다는 증언이 아닌가. 버닝썬에서 미성년자를 유흥접객원으로 동원하고, 성착취 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모두 이 법이 있었다. 실제 텐프로를 갈 수 있는 자금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직접 규칙을 만드는 자이고, 있는 규칙도 깰 수 있는 자들이다. 성매매피해상담소들은 이러한 유흥주점의 룸 안에서 벌어지는 성착취 행위를 제어하고 이를 처벌할 수 있기 위해 애써왔지만 법은 고소한 여성들의 편이 아니었다. 여성들이 손님 등 여럿이 보는 앞에서 온갖 모욕과 성적 학대를 당해도 이것은 유흥접객원의 ‘일’로 치부되었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부녀자’만을 유흥접객원으로 규정하는 것이 성차별적 요소가 있으니 ‘부녀자’를 삭제하는 것을 정부에 건의했으나 당시 대통령은 남성 유흥접객원은 있을 수 없다고 이를 거부했다. 우리는 요구한다. ‘부녀자’를 유흥접객원으로 두는 것 뿐 아니라, ‘유흥접객원’조항 자체가 문제이며, 이를 삭제해야 한다. 세계 어느 곳에도 밀폐된 방에서 손님의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흥을 돋우는 것을 법으로 명시한 곳은 없다. 룸살롱이라는 영업형태는 한국인 주재원과 상사직원, 여행객 등을 위해 세계 도처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오직 한국 남성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코로나19와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문제가 동시적으로 문제적 현장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이제 더는 좌시해서는 안 된다. 유흥업소의 코로나19 감염사태의 가장 최대 피해자는 그곳에서 손님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다. 에이즈나 메르스 등의 감염에서도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이 여성들이 비난과 혐오의 화살은 늘 먼저 맞는 대상이 되었다. 성희롱 당해도 되는, 성착취 당해도 되는 그런 ‘일’ 따위는 없다. 어린 청소녀에게 조차 ‘미래의 룸나무’라 칭하고, 아르바이트로 땀 흘리는 여성에게 가성비 떨어지게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도우미 일당을 운운한다. 이 지경으로 문제를 만들어온 ‘유흥접객원’, ‘유흥시설’, 이런 ‘유흥’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유흥주점’은 영원히 퇴출시켜야할 대상이다. 인간을 착취하는 ‘유흥’을 거부한다. 우리는 스스로 술을 마시고 흥을 돋우며 서로를 존중하는 여흥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이다. 이제 시대착오적이며 성착취적인 ‘유흥접객원’ 항목을 영구히 퇴출시킬 것을 요구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시국에도 유흥주점을 방문하고 유흥접객원의 접대를 요구한 이들이며,
이러한 접대를 법으로 명시한 한국의 전근대적 시대착오적 법령에 있다.

우리는 요구한다!
시대착오적이며 성착취적인 ‘유흥접객원’이라는 항목을 영구히 삭제하라!
성희롱과 성착취를 당당히 ‘접대’라며 요구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라!
인간을 한낱 유흥의 도구로 비하하고 차별하는 ‘유흥시설’을 퇴출하라!

2020. 4. 9.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한올지기,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대구여성인권센터, 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디딤, 수원여성의전화, 인권희망강강술래,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여성인권티움, 전남여성인권지원센터,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제주여성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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