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현대판 노예의 참혹한 삶 인신매매의 실태 고발

데이비드 벳스톤 지음/나현영 옮김/알마/1만5000원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벳스톤 지음/나현영 옮김/알마/1만5000원 킴 메스톤은 티베트 출신이다. 킴은 몇 년 전 티베트 망명자인 부모의 품을 떠나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미국인 목사의 약속을 믿고 미국으로 와 교회 사택에서 함께 살았다. 지역 유지인 목사에게는 아내도 있었다. 그러나 킴은 하녀가 되어 요리와 청소, 다림질, 교회 정원 손질까지 거의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목사는 5년 넘게 킴을 성적 노리개로 학대했다. 그는 킴이 학교 친구들에게 이런 사정을 알리면 가족들을 감옥에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킴은 누구에게도 이런 사정을 말하지 못한 채 5년여를 견뎌야 했고, 겨우 탈출해서야 경찰에 알렸다. 킴은 현재 보스톤에서 조그만 옷가게를 하며 고통 속에 허덕이는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킴의 경우는 제3세계 출신 10대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의 유형이다. 샌프란시스코대학 윤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벳스톤 교수가 쓴 이 책은 지구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현대판 노예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또 이들 ‘보이지 않는’ 노예들을 구하는 젊은이들의 영웅담도 아울러 소개한다. 2004년 유엔이 조사 발표한 ‘가내 노동착취 피해 어린이 1000만’이라는 보고서는 이런 사실들을 더욱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지금도 동유럽의 10대 여성들은 유럽 전역의 사창가로 팔려나간다. 가난한 인도 처녀들은 계급과 빚 때문에 미국에 노예로 실려간다. 아동 노동자, 성노예, 소년병, 강제 노역자의 실상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스무 살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27세 연상의 남편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맞선 한 번만으로 결혼했다. 지방의 윤락업소에서는 일하던 여성들이 연이어 자살했다. 업소에서 이들은 ‘돈 버는 기계’처럼 착취당했고 사채와 연대보증으로 엄청난 빚을 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어린 연예인들의 노예 계약 뉴스도 끊이지 않는다.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오랜 세월 노예 생활을 해온 사회적 약자들을 보도한다. 노예제는 과연 과거의 문제일까. 현대판 노예제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보이지 않는’이란 단어다. 저자는 미국에는 ‘보이지 않는’ 10만명의 노예가 있다고 고발한다. 미국을 거쳐 다른 나라로 팔려가는 노예는 3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200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상륙한 노예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지 못한 채 정복자의 욕심을 채우는 데 동원되고 있다. 탈출을 꿈꾸는 노예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가족을 향한 보복 등을 견뎌내야 한다. 이 책은 미국·캄보디아·태국·페루·인도·우간다·남아시아 등에 존재하는 현대판 노예의 참혹한 삶 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뱃스톤은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낫 포 세일(NOT FOR SALE)’ 캠페인을 세계적으로 벌이고 있는 인물이다. ‘낫 포 세일’은 저자가 2007년 책을 처음 출간하면서 시작한 노예제 폐지 운동이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예시하며 인신매매의 실태를 고발할 뿐 아니라, 소년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분투하는 운동가들의 활약상도 소개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는 인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역사적 순간에 서 있다”며 “현대판 노예제인 인신매매를 중단시키기 위해 각국 정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승욱 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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