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마이크로파이낸싱, 구명의 밧줄인가 죽음의 밧줄인가

마이크로파이낸싱, 구명의 밧줄인가 죽음의 밧줄인가

20101208.01200116000001.02L.jpg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그라민은행 주무크리 미르자푸르 지점 관계자로부터 대출금을 건네받고 있다. | 그라민은행 웹사이트

ㆍ딜레마에 빠진 ‘빈민소액대출금융’

“인도준비은행은 마이크로파이낸스를 규제하라.”

지난달 8일 인도의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 밖에서는 수십명의 여성들이 이런 내용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담보 없이 크지 않은 규모의 돈을 빌려주는 무담보 소액대출, 마이크로파이낸스 제도를 이용한 빈민들이다.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주요 고객인 여성들이 마이크로파이낸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라고 항의 시위를 벌이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기며 빈자의 ‘구명 밧줄’이 돼 온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어떤 이들에게는 ‘죽음의 덫’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 라리타 무르실물라는 16세의 밝고 활기찬 소녀였다. 지역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상업을 공부하면서 수업이 없을 때에는 발리우드 인기가요를 흥얼거리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다.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에서 나온 사람이 라리타의 집에 찾아왔다. 그녀에게 대출금을 언제 갚을 것이냐고 질문을 퍼부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몸을 팔아서라도 갖고 있는 돈을 모두 가져오라고 윽박질렀다. 충격을 받은 라리타는 어머니에게 일어났던 일을 털어놓은 뒤 다시는 다른 대출을 받지 말라고 사정했다. 그리고는 치사율 높은 화학비료를 삼키고 목숨을 끊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렇게 마이크로파이낸스로 인해 자살을 한 사람이 인도 안드라 프라데시 주에서만 적어도 75명에 달한다. 이곳은 인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중심지로 전체 규모의 30%가 집중된 곳이다.

시골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애초 담보조차 없어 일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100달러(약 11만원) 안팎의 소액을 빌려주는 데에서 출발했다. 1976년 방글라데시에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고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유누스 교수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리랑카, 인도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남미,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에도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저소득층의 돈줄로 자리잡으면서 전 세계 약 600억달러(약 68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마이크로파이낸스 부문은 ‘시장’을 넘어 ‘산업’이 됐다. 기존 은행권으로부터 자금이 흘러들어왔고 경쟁체제로 인해 자금 동원력이 커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논리로 상업적 목적의 마이크로파이낸스 회사들이 늘어났다. 비영리 단체에서 출범한 기관들이 영리단체로 노선변경하는 경우도 생겼다. 인도의 마이크로파이낸스 회사인 SKS도 처음에 비수익 단체로 출발했지만 몸집을 불려 영리기관으로 전환한 사례다. SKS는 인도의 10만개 마을에 도달할 수 있는 2200개 지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19개 주에 걸쳐 750만명의 고객에게 35억달러(약 3조9000억원)에 달하는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거대 기업으로 몸집을 불렸다.

우후죽순 생겨난 마이크로파이낸스 회사들이 풀어댄 자금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높은 이자율이 문제였다. 무담보 대출의 특성상 다른 대출보다 이자율이 높은 것은 받아들일 만하지만 100% 이상의 살인적인 이자율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멕시코의 평균 마이크로파이낸스 이자율은 75%에 이르고, 니카라과의 대니얼 오르테가 대통령은 2008년 당시 35%였던 이자율을 8~10%로 제한하는 기관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15% 수준에서 시작된 방글라데시의 대출이율도 지금은 40~100%까지 치솟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첫번째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또다른 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이른바 ‘돌려막기 현상’까지 나타났다. 방글라데시의 라니라는 여성은 돈을 빌려 소 6마리를 샀지만 농사가 망하고 나자 이자를 갚기 위해 3마리를 절반도 안되는 값에 팔아넘겨야 했다. 라니는 남은 소 3마리라도 제 값에 팔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빌린 돈을 되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경제 교육 등이 없이 무작정 이뤄지는 대출도 문제였다. 마이크로파이낸스 감시단체인 PKSF의 카지 콜리쿠차만 아흐마드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빌린 돈을 갚는데 10년 또는 20년 이상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무분별한 대출이 결국 “죽음의 덫”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쉽고 빠르게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때문에 미래의 이자나 상환에 대한 지식없이 무턱대고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고, 업체 측에서도 이에 대해 특별히 주지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출 업체들은 돈을 갚지 못한 이들에게 때로는 물리적인 압력을 행사해가며 빚독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가난한 집안의 마지막 생계 수단인 소나 닭, 주방기구까지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 수익창출이냐, 가난한 사람 돕기냐 = 결국 비즈니스와 자선사업의 혼합물인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수익 창출의도가 먼저냐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의도가 먼저냐는 딜레마를 안게 됐다.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그 이윤을 외국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구조 자체가 모순을 양산할 수밖에 없었다. 수익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정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첫번째 논쟁거리는 이자율이다.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심각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프라납 무커지 인도 재무장관은 27~30%를 넘는 고이자율의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들을 비판하며 강한 규제를 약속했다. 높은 이자율에 대한 여론도 따가워 지난달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SKS 설립자 비크람 아쿨라에게 “인도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이 너무 탐욕스러운 것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적정 이자율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독립 평가기관 마이크로레이트의 설립자 다미안 본 스타우펜버그는 지역마다 사정을 고려해 볼 때 20~30% 이상의 이자율을 측정하는 기관은 “비양심적”이라고 지적했다. 유누스 교수는 10~20%의 이자율이 적정선이라고 보고 그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악덕 사채업에 해당하는 위험영역”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우리는 진짜와 오용에 대해서는 구분해야 한다”며 “수익창출이라는 안경을 쓰고서는 결코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1008개의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을 분석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75%가 사채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라민재단의 알렉스 카운츠 회장은 지난 10월 아쿨라 SKS 설립자와의 토론에서 “SKS가 가난 극복에 초점을 두기보다 주주나 관리자를 위하고 있다”며 높은 이자율에 대해 비판했다. 그라민은행 역시 이윤을 내긴 하지만 극빈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대출 고객의 아이들을 위해 학자금 대출 등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누스 교수도 SKS가 원래의 임무로부터 표류해 사채업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들은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돈을 빌려주고 받는 업무 특성상 운영비가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높은 이율을 매길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100달러짜리 대출을 10번 하는 것이 1000달러짜리 대출을 한번 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파이낸스 정보교환소 MIX의 안드리안 곤잘레스 선임연구원은 “이자로 얻은 대부분의 돈이 운영비로 쓰이고 있다”며 “수익과는 반대로 비용을 줄이는 것이 이율을 낮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높은 이자율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 오히려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들이 극빈층에 대한 대출을 꺼리게 될 수 있다고 역풍을 우려한다.

노출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극빈층에게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제도로서 보여주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리고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사업적 역량이 커질수록 그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루이스 알베르토 모레노 미주개발은행 총재는 최근 한 지역 포럼에 참석해 “최근의 위기로부터 우리는 고객의 복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을 추구하더라도 주주나 투자자의 이익만이 아니라 고객, 즉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사회적 역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전국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