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대구여성인권센터가 조사한 신·변종 성매매 업소 실태…

동네 골목에 스며든 이상한 시장 [2011.01.14 제844호]

[줌인] 대구여성인권센터가 조사한 신·변종 성매매 업소 실태… 일상적 공간 침투, 철저한 회원제, 자유업종 분류로 단속망 벗어나  

성매매 실태를 다룬 이 기사에는 미성년자 혼자 읽기에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성년자는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춘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아 읽기를 권한다._편집자

 

대구 달서구 본리동 네거리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시 변두리 도로다. 도로를 따라 상가 건물이 늘어서 있고, 간간이 주유소·병원·편의점이 목을 지키고 있으며, 뒤편에 아파트·학교·상점이 자리잡고 있다. 인상적인 장소는 없다.

아파트·학원 옆 휴게텔과 안마시술소

평소라면 세 남자 역시 무심하게 네거리를 지나쳤을 것이다. 2010년 8월11일은 달랐다. 한여름의 해가 천천히 기울자, 최창진(사회당 대구시당 사무국장)·문정환(경북대 사회학과 대학원)·남경우(경희대 경제학과)씨는 눈을 크게 떴다. 도시의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자동차는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거리의 광고판에도 불이 들어왔다.

 

“죽기 전에 가보자.” 입식 현수막이 인도 한복판에 서 있다. 유흥주점 또는 비즈니스클럽이 내놓았다. 볼링핀을 닮은 광고탑도 있다. 유혹의 언어는 담대하다. “부디 왕림하시어 한 떨기 꽃을 꺾어주시옵소서.” 현수막과 광고탑에 박힌 사진 속에서 반라의 여자가 몸을 비비 꼰다. 오가는 이의 눈과 발에 자꾸만 차인다. 본리동 네거리에서 죽전 네거리에 이르는 1km 거리는 남자들 사이에서 ‘초보자 입문’에 적당한 곳으로 소문났다. 성매매의 입문이다.

세 남자는 유흥주점보다 더 특별한 곳을 찾고 있었다. 안마시술소·마사지방·휴게텔·성인컴퓨터방·전화방·키스방·유리대화방 등의 간판을 눈여겨 살폈다. 이른바 신·변종 성매매 업소다. 남자들은 어느 휴게텔에 들어갔다. “원래 1인당 10만원인데, 세 분이 함께 오셨으니 9만원에 해드리죠.”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선심 쓰듯 말했다. “모든 서비스가 가능하지요.” 중년 남자는 힘주어 말했다. 휴게텔 건너편에는 예식장이 있다. 어른·아이가 함께 모여 부부의 백년가약을 축복하는 일상적 대낮에도 맞은편 휴게텔에선 ‘모든 서비스’를 10만원 받고 일상처럼 행한다. 예식장 옆 휴게텔, 학원 옆 안마시술소의 풍경에도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 그 결과 성매매는 도시 전체를 통틀어 일상적으로 묵인·허용된다.

세 남자는 흥정만 하고 돌아 나왔다.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들은 대구여성인권센터가 진행한 ‘대구지역 신·변종 성매매업소 실태조사’ 조사요원이었다. 성 구매자인 척하되 성매매 여성을 만나지는 않고, 업소 입구에서 흥정하는 동안 실태를 살피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아울러 거리 곳곳에 나붙은 광고·간판을 중심으로 성매매 업소를 파악·분류했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8월1일부터 9월10일까지 한 달여에 걸쳐 대구시 7개 구와 1개 군을 뒤졌다.

대구여성인권센터가 <한겨레21>에 제공한 ‘2010 대구지역 신·변종 성매매업소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적어도 354곳에서 안마시술소·이용원·휴게텔·전화방 등의 명목으로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이용원’ 간판을 단 ‘퇴폐 이발소’(25%)였고, ‘휴게텔’이 18%를 차지해 두 번째로 많았다. ‘전화방’(14%), ‘마사지방’(11%), ‘안마시술소’(10%) 등도 적지 않았다(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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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지역 신·변종 성매매 업소 현황

사전 예약, 거짓 간판… 철통 보안 속 영업

이번 조사의 계기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이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성매매 업소 실태조사를 위한 수백만원 단위의 예산을 전국 광역 지자체에 내려보냈다. 예산 규모상 특정 동 단위를 표본추출하는 ‘참고용 조사’ 목적이었지만, 대구시의 의뢰를 받은 대구여성인권센터는 푼돈 같은 예산을 밑천 삼아 자발적으로 발품을 더 팔았고 결국 광역시 전체의 실태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대구 시내 모든 성매매 의심 업소를 조사하지는 못했다. 식품위생법상 식품접객업소로 등록하는 룸살롱·단란주점·유흥주점 등 ‘전통적인’ 성매매 업소는 제외했다. 흔히 ‘집창촌’으로 부르는 성매매 집결지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성매매 업소가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업소를 직접 방문해 성매매 사실을 확인한 결과만 조사에 반영했다. 당국에 등록한 대구 시내 ‘이용원’은 모두 1250곳인데,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성매매 이용원은 88곳이다. 나머지 1160여 이발소 가운데 일부도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사원 3명이 한 달 안에 일일이 확인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대신 신·변종 성매매 업소에 초점을 두고 ‘규모’보다 ‘실태’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가격, 호객 방식, 영업 특징, 업소 구조 등을 상세히 조사했다. 신·변종 성매매 업소는 공중위생법(이발소), 의료법(안마시술소), 풍속영업법(비디오방) 등에 따른 영업장으로 등록한다. 따라서 도심은 물론 주택가에 쉽게 자리잡을 수 있다. 최근에는 ‘자유업종’으로 등록한 성매매 업소도 등장했다. 자유업종은 특정 법률에 근거해 허가받을 필요 없이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증을 내는 것만으로 영업이 가능하다. 역시 도심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양적 조사 대신 질적 조사를 택한 결과, 한국 사회의 성매매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라기보다는 퇴행)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사팀은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이른바 ‘대딸방’ ‘키스방’의 실태를 밝히고 있다.

“10시쯤 모처에서 ○○를 만나 과일가게로 찾아갑니다. ㅎㅎ. 철저한 회원제와 예약 시스템을 보니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더군요. 저는 대구 지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서비스 마인드를 가진 △△를 선택했습니다. (중략)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을 했기에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었습니다.”

성구매 남성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이용후기’다. 200자 원고지 3장 분량인데 상세한 내용은 차마 옮겨 적을 수 없다. ‘과일가게’는 성매매 업소를 일컫는 일종의 은어다. 신·변종 성매매 업소 가운데서도 가장 최근에 등장한 ‘대딸방’은 철저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조사 보고서를 보면 △온라인을 통해 회원으로 가입한 남성만 이용할 수 있고 △회원이라 해도 반드시 사전에 예약해야 하고 △업주는 등록된 회원 전화 이외의 발신 번호는 아예 받지 않으며 △수시로 업소를 옮기면서 ‘뷰티숍’ 등 거짓 간판을 내걸어 위장하거나 아예 간판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철문과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입구에서 인터폰으로 업주와 통화해 본인 여부를 확인받은 뒤에야 출입할 수 있다.

회원제의 핵심은 인터넷 카페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등급’을 부여받는데, 기존 정회원과 함께 공동으로 업소를 방문해야 승격시켜준다. 업주는 회원에게 “방학시즌 신상품 대량구비” 따위의 문자를 보내고, 회원은 인터넷으로 상대 여성을 골라 성매매를 예약한다. 성매매 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돼 할인 혜택을 받는다. 정박은자 대구여성인권센터 상담팀장은 “성 구매자의 철저한 익명성과 신변 안전망을 확보해, 구매자의 도덕성과 사회적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 신·변종 성매매업의 영업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단속의 사각지대에서 보호받은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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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1〉

자위행위를 대신 해준다는 낯뜨거운 명칭 자체가 업태의 특징을 반영한다. 기존 성매매 업소는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마사지’ ‘안마’ ‘대화’ 등의 단어를 골라 정체를 위장했다. 반면 이들은 간판을 내걸지 않고 당국에 등록하지도 않는 비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므로, 성매매를 천박하게 표현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간혹 언론에 보도되는 ‘키스방’ 역시 자유업종으로 분류되는데, 입만 맞춘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본격적인 성매매 업소로 자리잡았다. 조사 보고서는 “대구의 경우 세 종류의 키스방 체인점까지 생겼고, 지점을 포함한 체인 가맹업소만 16곳이 있다”고 밝혔다. 역시 회원제·사전예약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최신 변종 성매매 업소’는 안마시술소·이용원 등과 달리 성매매 사실이 드러나도 허가취소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지 않는다. 자유업종으로 세무서에만 신고하면 되므로 구청은 “단속 권한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세무서는 “업체에 징세를 할 뿐, 단속의 근거나 인력이 없다”고 말한다. 경찰은 “성매매 현장을 적발해야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회원제·예약제는 이런 단속을 간단히 무력화한다. 적발돼도 벌금형에 그친다. 이윤이 벌금보다 항상 많으므로 업주는 비밀 영업을 계속 한다. 조사팀은 “특히 ‘대딸방’은 아예 어느 곳에도 신고하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두손을 들어버린 결과를 조사팀은 지도에 담았다. 단속 기관인 구청·경찰서 주변에도 성매매 업소는 즐비하다. <지도1>은 대구 서구청 일대, <지도2>는 대구 성서경찰서 일대 신·변종 성매매 업소 현황이다. 성매매 업소 사이로 초·중등학교, 아파트 단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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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2〉

이번 조사 결과에는 소득에 따른 성매매 특성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김박영숙 대구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수성구에는 룸살롱이 많은 반면 신·변종 성매매 업소가 적었고, 서민이 사는 북구·서구 등엔 룸살롱은 거의 없고 키스방·대화방·퇴폐 이발소 등이 많았다”고 말했다. 신·변종 업소의 주된 고객이 중산층 이하 서민이라는 이야기다.

조사 보고서를 통해 2011년 한국 성매매 실태의 얼개를 그릴 수 있다. 일상 공간 곳곳에 기존 법령을 피해가는 각종 성매매 업소가 들어와 ‘접근성’을 높였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성 구매자의 신변을 보호함으로써 ‘익명성’을 보장했다. 그 결과 부유층의 은밀한 룸살롱에 버금가는 중산층·서민의 성매매 공간이 확산되고 있다.

대구여성인권센터가 조사 보고서에서 거듭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2006년 성매매 방지법 제정에 따른 성매매집결지 단속의 여파로 성매매 업소가 주택가까지 침범했다는 이른바 ‘풍선론’에 대한 비판이다. 최창진 사무국장은 “성매매 집결지를 단속한 반대급부로 신·변종 성매매가 확산된 것이 아니라, 성매매 방지법의 사각지대에서 오히려 이들 업소가 ‘보호’받은 결과 다양한 방식의 성매매업이 성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욕망을 돈 주고 사는 일이 당연한가

조사팀은 △당국의 지속적인 감독·처벌 △자유업종으로 분류된 신·변종 업소에 대한 법적 규제 방안 마련 △거리 입간판 등 호객·광고 행위 규제 △성매매 업주의 소득 환수 등을 제도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박영숙 대구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사람의 관계가 법의 토대를 이루는 만큼, 욕망을 돈 주고 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적 인간관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근본적 주문도 내놓았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보고서에 “조사를 통해 살펴본 대구의 풍경은 성매매의 생산·재생산이 거리낌 없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곳이었다”고 적었다. 한국의 어느 땅이 그렇지 않겠는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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