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프리즘] 풍선효과와 자연산

[한겨레 프리즘] 풍선효과와 자연산 / 박주희

한겨레 원문 기사전송 2011-01-02 18:35

[한겨레] 세 남자가 묻는다. “이용 시간은 몇 분? 서비스는 어디까지? 얼마예요?” 꼬치꼬치 캐묻고는 쓰윽 다시 나온다. ‘간판엔 휴게텔인데 모든 서비스 가능. 가격은 10만원이며, 흥정하면 1~2만원 깎을 수 있어. 여성 종업원 나이대는 30대. 내부 구조는 확인하기 힘들었음.’ 꼼꼼히 기록해둔다.

세 남자는 성구매자인 척 업소에 들어가 성매매 실태를 조사한 대구여성인권센터 조사원들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8월부터 한달 동안 전국에 있는 이른바 ‘신변종 성매매업소’ 실태조사를 벌였다. 대구지역은 대구여성인권센터가 맡아 조사했다. 결과는 화려했다. 안마시술소, 이용소, 마사지업소, 휴게텔, 전화방·화상대화방, 성인피시방, 유리대화방, 인형체험방, 대딸방, 키스방, 페티시클럽 등이 354곳이었다. 센터가 엮은 자료집에는 세 남자가 발품을 팔아 확인한 성매매 현실이 날것 그대로 기록돼 있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성을 사는 일은 참 손쉽다. 성구매 의사가 있고, 돈만 있으면 별다른 수고를 할 필요 없이 거리에 널린 성매매업소를 이용할 수 있다. 적극적인 성구매자들은 성매매업소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돌면서 후기를 참고해서 마음에 드는 업소를 고른다. 회원제로 운영되거나, 예약만 받는 곳도 간단한 가입절차만 거치면 그만이다. 일부 업소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하고 있다. 이번 조사를 이끈 대구여성인권센터 활동가 ‘뚤린’님의 말처럼 여기서 성구매자는 낯선 이들이 아니다. 아내의 남편이고, 딸들의 아버지고, 여동생들의 오빠들이다.

‘신변종 성매매업소 실태조사’ 결과물인 이 보고서 제목이 ‘신변종-허구의 논의에 가려진 것’이다. ‘필드’를 샅샅이 훑어본 세 남자에게 ‘가려진 것’에 대해 물었다. 최창진(사회당 대구시당 사무국장)씨와 남경우(경희대 경제학과)씨는 ‘풍선효과’ 담론의 음모를 들춰냈다. 풍선효과, 성매매방지법의 등장과 함께 귀가 닳도록 듣다 보니 ‘성매매방지법 부작용=풍선효과’라는 게 상식으로 굳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성매매업소 집결지를 단속하니까, 변형·발전된 신변종 성매매업소들이 주택가로 스며들었다는 거다. 이 근거없는 추론은 집결지를 그냥 두는 게 낫다는 해괴한 주장을 뒷받침해왔다.

한때 된서리를 맞았던 성매매업소 집결지는 다시 버젓이 영업중이다. 성매매방지법 이전에도 한국에서는 생활공간 곳곳에 성매매업소가 있었다. 윤락행위등방지법 시절에도, 그 이전에도 성매매산업은 경쟁적으로 ‘발전’해왔다. 결국 풍선효과는 성매매방지법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거대 산업의 번창 책임을 법 탓으로 돌려 법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숨긴 담론이고, 여기에 속지 말자는 게 이들의 얘기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게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은 사회에서 정치인들의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놀랄 일도 아니다. 주변에 불법 성구매자들이 득실대는 현실은 외면한 채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에는 온 사회가 펄쩍 뛰며 꾸짖는 행태가 오히려 모순이다. ‘성희롱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겉으론 여론의 뭇매를 맞는 동시에 주변으로부터는 ‘재수없게 걸렸다’며 위로를 받는다. 사태수습 수순으로 공개사과를 할 때도 말실수는 인정하지만, 그 실수를 불러온 왜곡된 성인식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딱히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끄러우니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성매매 권하는’ 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새해니까 바람 하나 적어본다. 올해는 정치인이 적어도 국민을 성희롱하는 일은 없었으면.

박주희 지역부문 기자hop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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