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성학자들 “나꼼수 놀이판 키운 건 새로운 여성

여성학자들 “나꼼수 놀이판 키운 건 새로운 여성”

 이 현상을 ‘마초 문화’로 분석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시각과,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의
성적 엄숙주의’를 질타하는 나꼼수 쪽 입장이 모두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입장은 나꼼수 논란 자체를 거대한
‘놀이판’으로 보는 것으로, ‘진영 논리에 빠져 여성을 대상화한다’며 나꼼수 쪽을 비판해온 페미니스트들의 의견보다는 좀더 허용적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여성연구소는 16일 오후 서울대에서 ‘농담과 비키니, 나꼼수 사건을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선’이라는 제목의 긴급
집담회를 열었다.

 이날 60여명의 청중들이 모인 가운데 발제에 나선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들은 “비키니 논란에 비키니 시위
자체가 없었다”며 “‘꼴페미’도,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이 논란에서 비키니 시위를 벌인 여성 주체를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4명의 연구원들은 공동 발제문에서 “한달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 사건의 의미를 마초 대 꼴페미의 구도로
단정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며 “논란을 진화하기보다 제2라운드를 열어 이 사건이 가진 복합성에 대해 더욱 심도 있게 논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담회 제안 이유에 대해서는 “마초 대 꼴페미라는 대립구도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 페미니즘 자체였다는 반성에서 출발하며
동시에 나꼼수 쪽도 문제를 일면적이고 불완전하게 파악했다”고 양쪽 모두를 비판했다.

 이들은 “일명 ‘비키니-코피 사건’은
여성운동이 발전시킨 페미니즘의 언어로 풀이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피해자 패러다임과 성적 엄숙주의를 비판한 김 총수의
발언에 대해서도 “페미니스트들이 성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난 지는 오래 됐지만, 피해자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꼼수의 유치한 성적 농담은 사실 ‘만들다 만 마초놀이 규칙’이며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 외설을 위한 언어자원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섹시한 동지가 왜 존재할 수 없나”라는 김 총수의 발언에 대해 “‘섹시한 시위’를 ‘섹시한 동지’라고
오해했고 여성의 몸에 섹스 코드가 부여돼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여성의 몸을 이용한 시위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지형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비키니 시위를 벌인 여성은 발랄함을 지닌 채 성적 억압을 벗어난 성정치성과 권력을 조롱하는 정치성을 동시에 담보하고
있으며 이런 복잡성은 단시 ‘섹시한 동지’로 쉽게 환원시켜 단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다시 사유해볼 것을 제안했다. 김수진 연구원은 “새로운 문화코드를 가진 새로운 여성들이 ‘B급 마초놀이’의 판을 키웠고, 이 가능성을
지닌 여성주체들이 그 안에서 활발하게 놀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이 가진 ‘발랄함’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새로운 여성주체들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가진 주체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정치와 놀이를 동시에
수행한 ‘마초놀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나꼼수’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동격”이라며 “그러나 이 놀이판을
닫을 것인지, 판을 벌릴 것인지에 대한 결정마저 이 판을 키우고 안에서 여러 코드를 갖고 놀았던 새로운 여성주체 자신들이 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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