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후기] 영화 코코순이 관람

작성자: 성미래

지난 8월 10일 여성인권센터 [보다]는 다큐멘터리 <코코순이>를 관람하였습니다. 미국이 작성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포로심문 49번 보고서에 등장하는 ‘코코순이’라는 이름을 기반으로 하여, 49번 보고서가 작성된 배경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49번 보고서는 미얀마에서 미군에게 포로로 잡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쇼핑을 즐기며 호화롭게 살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일본군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강제 동원했음을 부정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자료입니다.

영화는 당시 미얀마에서 포로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났던 미국의 퇴역군인의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역시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미얀마에 갔다고 지금까지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49번 보고서는 왜곡된 내용으로 작성될 수 있었을까요?

당시 한국에서는 취업사기가 횡행했습니다. 파파상, 마마상이라고 불렸던 자들이 ‘부상당한 군인을 돌보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거짓말하며 일자리가 필요한 여성들을 모집한 것입니다. 49번 보고서 속의 ‘코코순이’인 박순이 할머니를 유인한 마마상과 파파상은 기존에 서울에서 유곽을 운영하던 업주 부부였습니다.

이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합니다. 박순이 할머니는 취업하여 가족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고향 함양에서 미얀마까지 이동하였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일본군 ‘위안부’ 수용소였습니다.

연합군은 미얀마의 일본군 ‘위안부’를 심문할 때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요. 이에 포로 심문은 두 단계의 통역을 거치게 됩니다. 일본군 ‘위안부’들이 일본인 마마상에게 한국어로 심문에 답변하면, 다시 마마상은 이 내용을 일본어로 연합군의 일본인2세 통역관에게 전달하고, 연합군 통역관이 최종적으로 영어로 통역하여 심문관에게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마마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왜 미얀마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거짓에 속은 거였는지 진술한 내용을 왜곡없이 전달했을까? 또한, 연합군의 일본인2세인 통역관은 모국인 일본의 만행을 진실되게 연합군에 고발했을까?

당시 일본군 ‘위안부’ 수용소가 있었던 미얀마의 지역주민들은 마마상과 파파상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감시하였고, 남루한 차림새의 한국인 여성들은 매우 주눅들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마마상, 파파상은 아마도 지금의 업주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었겠지요.

2차 대전이 끝나고 ‘코코순이’ 박순이 할머니는 미얀마에서 인도를 거쳐 중국에 정착하여 생활하셨습니다. 그리던 한국에는 생을 마감하시기 몇 해 전에야 돌아오실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기까지의 기나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으셨을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관람 내내 안타깝고 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박순이 할머니의 행적을 이렇게나 거침없이 추적하는 것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거침없음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성착취 피해자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100년 전에 마마, 파파라고 불렸던 업주들은 여전히 언니, 삼촌과 같은 가족의 호칭으로 불리며 여성들을 유인하고 착취합니다. 성착취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 반면에, 착취의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이 저를 씁쓸하게 하기도 합니다. 착취의 역사가 길고 긴만큼 우리는 단단히 연대해야만 할 겁니다. <코코순이>의 관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코코순이>를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