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기자회견-텔레그램 성착취 끝장, 이제 시작일 뿐이다!

11월 26일,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 피고인 6명의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피고인들이 이전에 비해 비교적 높은 형량을 선고받았으나, 텔레그램 성착취 끝장을 위한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당일 선고 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일시: 2020년 11월 26일(목) 오전 11시 (선고 공판 직후)
■장소: 서울중앙지방법원 동문 앞
*사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효린 사무국장

<발언1>

피해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법원을 바란다.

-법률지원 과정에서 바라본 문제점-

조은호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오늘부로 박사방 주요 공범들의 1심 재판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조주빈과 공동피고인들은 각각 ○○형을 선고받았고, 당분간은 이 사회로부터 격리될 예정입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이 공론화되고, 수백만의 국민청원 동의를 이끌어내며, 수사가 시작되고 재판이 진행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과 성폭력처벌등에관한특례법에 새로운 조문이 신설되었고, 개정을 통해 처벌도 강화되었습니다. 디지털 성폭력, 성범죄라는 말이 일상에 자리 잡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도 이전보다는 높아졌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가해자들의 폭력을 버텨내고 생존하여 그들의 범죄를 고발한 피해자들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결과 앞에 어떤 수사기관도, 어떤 법원도 영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 모든 사건 과정에서 보고 들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되새기고, 어떤 피해자의 희생 없이도 사회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더 이상 피해자의 눈물과 절규를 사회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 변호사의 일원으로 재판에 참석하면서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지위와 권리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보았습니다. 피해자는 우리 형사법상 소송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실관계의 당사자입니다. 당사자로서 피해자는 스스로가 원한다면 본인의 피해를 둘러싼 수사와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하며, 법률에 따라 자유로이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보호와 배려, 존중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피해자의 권리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존중은 피해자의 권리로서 당연한 것이어야 합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를 시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는 인격을 지닌 엄연한 사람으로서, 피해자의 절차 참여와 진술 등은 단순 증거, 증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피해자는 수사와 재판 절차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겪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으로 가해자 처벌에 기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피해자가 피해 당시의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 처벌 이후에도 범죄 피해의 기억을 껴안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정의를 찾는 경험은 생존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절차에 대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량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법적 과정에서 피해자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고자 노력하여야 합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 법률 지원을 하면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법원의 미흡한 대처에 유감을 표하는 재판부를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가해자조차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법원이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탓에 적합한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진솔한 고백은 인상 깊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국민들의 공분 속에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그와 같은 관심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전국 각급의 모든 법원이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뛰어난 이해도와 깊은 성인지 감수성을 보일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홀로 법원을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존중을 운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모든 법원이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대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있을 디지털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법원이 어떤 설비를 갖추고, 어떤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해야 할지 반성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법원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한 최소한의 일관된 기준을 갖출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사건 공판은 재판절차에서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 존중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던 과정이었습니다. 오늘의 선고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입니다. 법원 또한 1심 종결과 함께 모든 소임을 다하였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피해자가 안심하고 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법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용기 낼 수 있도록 피해자에게 친화적인 법원이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멈추지 말기를 바랍니다.

<발언2>

피해자의 일상피해의 복구는 시작될 수 있는가?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대독 안경옥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2020년 11월, 우리는 텔레그램 성착취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확산했던 범죄자들에 대한 대한민국 재판부의 유죄판결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백만의 국민들이 서명에 참여하고, 전국 법원에 수많은 여성 시민들이 한회도 빠지지 않고 방청을 갔으며, 피켓을 들고 외쳤고, 언론이 검거부터 재판까지 보도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오랫동안 피해자들은 외로이 조용히 버티고 버텨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 세상에서 먼저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협박과 유포와 여성혐오 속에서 누군가는 파일이름이 되고, 품번이 되고, 영상이 되고 합성 편집 가공된 이미지가 되어 여전히 세계를 떠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살아있는 그 이가 데이터 속에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존엄한 시민으로 안전하고 평범하게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데이터들이 박살나고 폐기되어 더이상 사람이 파일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시간이 시작될 수 있습니까? 범죄자들이 죄의 값을 받기 시작할 때, 피해자 일상피해의 복구도 시작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이르러서야 디지털 성폭력을 ‘피/해/자’의 관점으로 보고, 느끼고, 알고, 생각하고, 대응하는 전환을 해야만 합니다. 이제라도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시작된 과제입니다.

피해자들은 조주빈만이 아니라, 공범들, 아직도 잡히지 않는 중간 가담자, 유포하고 다운로드 받은 가해자들을 계속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다시 고소장을 제출해야 하고 다시 피해자로서의 법적 역할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해볼 만한 희망이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수사기관과 검찰은 확보한 가해자들의 증거목록에서 피해자들의 피해 내용을 확인해주기 바랍니다. 범죄자와 가담자들은 모두 공유하고 유통했는데, 피해자들은 매 피해마다 다시 고소하고 시작해야 하는 과정은 이에 대응하게 어렵습니다. 또한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률구조가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더욱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협박과 유포는 특정 영상 해시값과 특정된 url로만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또 다른 입증 역할을 피해자에게 부과할 뿐입니다. 유포 확산 차단은 이미 피해물을 유통하고 있는 광범위한 수요자층을 대대적으로 포획하고 차단할 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가 플랫폼마다 특정 패턴과 특성을 가지고 이루어지므로 해당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피해물에 대한 모든 텍스트, 댓글, 링크까지 차단할 수 있도록 플랫폼의 삭제를 빠르게 계속 계속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피해자와 피해자 조력자가 개인적으로 하도록 놔두지 말기 바랍니다.

피해자들의 개인정보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한명의 가해자를 유죄 선고 했다 하더라도 이후 셀 수 없는 같은 형태의 피해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피해자 개인이 이름과 등록 번호를 교체하는 것은 아주 최소한의 방책에 불과합니다. 삶의 전반의 영역에서 신상 유출 피해가 불러오는 피해를 복구하는데 정책과 제도가 전 방위적인 대응을 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여전히 가해자의 사정을 중심으로 형량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촬영 범죄에 대해서는 유포하지 않아서, 유포 범죄에 대해서는 영리목적이 없어서, 영상제작 범죄는 얼굴을 또렷하게 만든 건 아니어서 감경해주고 있습니다. 양형위원회는 이러한 가해자 중심 시각 중 일부를 아예 감경 기준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가해자 중심의 양형기준을 제발 끝내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다섯가지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바꾸는 활동을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전국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자들에 대한 선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피해자의 일상회복의 시작일 수 있으려면,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기까지 오늘까지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지켜온 모든 피해자들과 함께 또 내일을 시작하겠습니다.

<발언3>

우리는 더 나아간 판결을 원한다.

김단비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이 잡혔다는 기사가 보도될 때부터 공동대책위에서는 관련 사건들의 재판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모니터링의 이유는 분명했다. 사건 초기부터 등장한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문장이 보여주듯이 성폭력 범죄에 납득하기 어려운 가벼운 판결을 내려온 검찰과 재판부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성범죄의 경우는 더하다. 2018년 경찰청의 범죄통계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로 기소된 피고인 중 징역을 선고받은 비율은 5.3%밖에 되지 않는다. 디지털 성범죄를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에 비해 가볍게 치부하는 재판부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공대위에서는 34명의 피고인, 30개 사건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지금까지 4개 사건이 선고 확정되었고 6개 사건은 1심 판결 후 피고인과 검찰 모두 항소하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재판 참관을 위해 각 지역 단체가 연대하여 함께 하고 있다. 공대위가 아닌 다양한 단체에서도 재판을 기록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여성들의 꾸준한 방청연대와 관심에 재판부에서도 디지털성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텔레그램 채팅방을 운영하며 성착취물을 공유한 ‘와치맨’에 대해 검찰은 지난 3월, 3년 6개월을 구형했다가 사건이 이슈화되자 추가수사를 했다. 이후 징역 10년 6개월을 구형했고 결과적으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텔레그램 성착취방을 운영한 ‘로리대장태범’과 공범들에게도 각각 징역 7년과 8년, 미성년자인 가해자들에게는 법정 최고형이 선고되기도 하는 등 이전보다 높은 형량이 내려지고 있다. 검찰과 재판부가 성폭력 근절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이러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분노스럽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명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아간 판결을 원한다. 이전과 달라진 판결을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첫 번째는 가해자 중심의 양형기준이다. 한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의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어머니를 증인으로 신문했다. 피고인의 평소 품행에 문제가 없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피고인의 품행이나 유대관계가 좋았다고 해서 그가 일으킨 피해의 정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가족인 어머니를 증인으로 승인한 재판부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 또 다른 가해자는 공무원인 부친의 동료들이 탄원서를 모아 제출하기도 했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감형사유로 인정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가해자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스스로를 변호한다. 그러나 이미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유대관계와 재범 가능성 등이 다 무슨 소용인가. 피해자의 현실을 반영하는 양형기준과 적극적인 재판부의 해석이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거의 모든 가해자가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쌓이는 반성문의 숫자와는 다르게 법정에서 마주한 몇몇 피고인들은 고개를 바짝 들고 방청 온 사람들을 노려보는 등 반성과 거리가 먼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판결에서는 아직도 피고인의 진심 어린 반성이 감형 사유가 되고 있다. 현재 2심이 진행중인 한 텔레그램 성착취방 운영자는 공대위 측에 사과를 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진정으로 사과를 할 거라면 그 대상은 피해자여야 마땅하다. 게다가 정말로 본인의 잘못을 반성한다면 그에 걸맞는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도록, 반성의 정도에 맞는 형을 내려야 한다.

두 번째는 유포와 소지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폭력에 대한 검찰과 재판부의 인식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지역마다 편차가 있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은 여전히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유포나 소지에는 아직도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 닉네임 ‘체스터’에게 아이디를 받아 성착취물 공유방을 운영한 김모씨는 작년에 검거되어 올해 1월, 징역 1년 2개월이라는 믿을 수 없는 판결을 받았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이슈화 된 후 항소심이 재개되어 형량이 높아지기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징역 10개월로 오히려 감형되었다. 이 방에는 8천여 명이 접속했다. 김모씨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게시하고 자신의 영상을 지워달라는 피해자를 도리어 협박하며 성착취물을 제작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금전적 이득이 없었고 영상을 공유한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1년도 되지 않는 형을 선고했다. 지난 11월 12일에는 텔레그램 성착취방에서 성착취물 2,200여 개를 구입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결과들은 재판부의 잘못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유포는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는 중대한 범죄다. 한번 유포된 영상같은 이미지물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손을 떠나 어디로든 떠다닐 수 있다. 이는 2차, 3차, n차 피해를 야기한다. 여성들은 이 유포 피해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해 왔다. 그럼에도 이를 실재적 피해로 인지하지 않는 재판부의 성인지감수성 뿐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이제는 새롭지도 않은 공간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이다.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판결은 그 누구의 공감도 살 수 없다. 검찰과 재판부는 디지털성폭력의 특수성과 피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물론 높은 형량이 문제 해결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처벌은 가해자들의 죄를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또 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이 사회가 그 범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가를 알려주기도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처지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피해자의 피해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에 사회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피해는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변화가 더딜수록 피해는 더 늘어난다. 우리는 더 나아간 판결을 원한다.

<발언4>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의 발언

대독 김여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장)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꺼내기에 앞서 이 자리에 저의 이야기를 듣고자 오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벌써 오늘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 날은 아직도 생생한데 오늘까지는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참 흐릿하네요.

국민들께서도 같이 분노해주시고, 그만큼 많은 언론에서도 관심 가져주셨습니다.

언론에 노출이 되어야 저의 피해사실에 대한 규명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또 다가오시는 그 시선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번도 이런 언론화를 겪어보지 못한 저의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피해사실과 가해자들의 수법을 가십거리 마냥 풀어내는 모습들을 보고 너무나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것을 보는게 더 치가 떨렸습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을 재구성하며 반복적으로 보여주셨으니까요.

또 조주빈이 무슨 영웅이라도 된 것 마냥 그의 일생을 알아야 했으니까요.

마치 그가 그렇게 자라서 이런 짓을 한 게 이해가 된다는 것처럼 풀어내시곤 했죠.

그러한 기사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그에 따른 비판적인 댓글이 달리고

다시 한번 언론이 만든 피해자의 이미지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쳐있던 상황만큼 도와주겠다는 손길 하나가 너무나도 감사했고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결코 따뜻함 뿐만이 아니란 걸 알았던 순간엔 정말 외면 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또한 사회적인 위치와 영향력을 충분히 가지고 계신 분들이 앞에서는 여성인권을 그리 지지한다 말씀하시면서 뒤에선 성희롱적인 발언을 저한테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시고 그런 분들이 이 사건에도 어느정도 연관성 있게 수사에 참여했다는게 무척이나 소름 돋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끼리 뒤에서 물고 뜯고 서로 약점을 모은다는 것도 이런 경광을 처음 보는 제겐 너무나 경악스럽더군요,

세세하게 말하기 입 아프고 부당한 경험들로 말 못할 역겨움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건 뒤 이런 경험을 가지신 피해자분들이 비단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피해를 수단화하여 이익을 취하려 하셨던 모든 분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인지하시고 모두 스스로 찔리길 바랍니다.

여러가지 댓글과 의견들을 보며 사건이 일어난 후 제 잘못이 아닌가 몇 번이고 돌아보았습니다.

사건의 피해자가 저만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해서 어떠한 의견을 말한다는 것이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생각해서 적절한 선에서 용기 내어 말합니다.

잘못된 내용들도 많았고 그 중 정말 이건 아니야 라며 소리지르고 싶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또 이 사건을 보시는 어떤 분들은 피해자의 잘못이라 집어 말하기도 하셨습니다.

말하고 싶은게 많지만 속으로 삼킵니다.

저의 잘못이라 인정하면 왜 그런 선택을 했냐 비난 당할 것 같고,

잘못이 아니라 호소하면 잘못 한 것이 맞다고 비난당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범 조주빈이 선고되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있습니다.

공범들은 사건이 진행 되고있고, 몇몇은 아직까지도 수사 진행중이죠.

숨고 싶었지만 제가 두렵다 피하면 그들이 웃을 것을 알기에

앞으로 살아갈 저에게 그들이 저를 피하는게 맞다 생각됩니다.

우리는 매일 발전되가는 디지털 사회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암호화된 화폐, 암호화된 채팅방 그 안에서 이루어진 카르텔

이러한 발전이 되기 전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재판부는 앞으로의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공범들 처벌에 있어서도 엄벌을 내려주시고 이런 사회악적인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자회견문>

텔레그램 성착취 끝장, 이제 시작일 뿐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오늘 11월 26일, 조주빈 외 2인의 1심이 종료되었다. 지난 3월 25일 조주빈이 검거된 뒤로 8개월이 지났다. 작년 11월 본격적으로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공론화 되고 나서 꼬박 1년이 더 걸린 셈이다. 그동안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은 전국적인 공분 속에 수사가 진행되었다. 조주빈(박사), 강훈(부따), 이원호(이기야), 문형욱(갓갓), 안승진(코태), 남경읍 등 주요 운영진이 검거되었으며, n번방 이용자 1만5천 명의 신상 정보도 입수하여 1000여 명이 ‘n번방’과 관련하여 수사를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가 단속한 공무원 149명 중에는 군인·군무원, 교사, 경찰·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충격적이었다.

오늘 판결은 사회에, 특히 여성 시민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 상징성이 있는 ‘박사’ 조주빈이 판결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에서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가해자이며, 시민 200만명이 조주빈을 엄중처벌하라고 청원한 바 있다. 또 이번 판결은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중에서는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들은 텔레그램 내에서 ‘절대 잡히지도 않고 처벌받지도 않는다’고 비웃어왔다. 슬프게도 그럴 확신을 가질만한 사회였다. 여성의 어떤 피해는 경험으로써 실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도 내에서 읽히지 않았고, 그래서 존재하지도, 구제받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조주빈의 말은 오늘로써 틀린 것이 되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 24일 출범하면서, ‘우리는 모든 플랫폼에서의 성 착취가 종식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들은 결코 이것이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피해와 가해를 법과 제도 내로 불러들이는 노력은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절실히 필요하다. 조주빈 이외의 수많은 가해자가 법정에 서고 있지만, 죗값을 제대로 받은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아직도 단순 유포 사건은 벌금형으로 끝나는 등 형량이 몹시 가볍고, 지난 16일에는 ‘와치맨’ 전 모씨가 고작 7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피해 지원에 관련된 문제들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재판부 역시 쏟아지는 전국민적인 관심 때문에 반짝 눈치 보았다가, 이내 관성대로 ‘n번방이 먹고 자랐던’ 그 판결들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하는 불신과 우려도 그대로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끝장을 볼 것이다. 성 착취의 근간을 찾고, 그것을 발본색원하고, 가해자들이 죗값을 받을 수 있게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피해자 회복을 꾀할 수 있게 사회 인식을 갖추어 나가는 일은 결코 짧은 호흡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 길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길고 노련한 호흡으로 나아갈 것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끝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연대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