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공대위 기자회견 발제문1. 텔레그램 성착취방 운영과 유형 분석]

2020년 3월 26일 진행된 기자회견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장내자”의 발제문을 공유합니다.

1. 텔레그램 성착취방 운영과 유형 분석

소라넷에서 텔레그램까지

좀비 남성성으로 수행되는 온라인 조직범죄

신성연이(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자유롭고 안전한 메신저가 성착취 플랫폼이 되기까지

텔레그램은 러시아 태생의 두로프 형제가 2013년에 출시한 비영리 메신저다. 텔레그램의 정신, 즉 개인의 정보통신망을 감시하는 ‘제3자 완전 차단’ 정책을 만든 동생 파벨(Pavel Durov, 1984~ )은 재정을 후원하며, 수학자이면서 개발자인 형 니콜라이(Nikolai Durov, 1980~ )는 텔레그램 프로토콜을 완성해 기술 기반을 만들었다. 텔레그램 본사는 독일 베를린에 있지만 데이터 센터는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으며, 텔레그램에 저장되는 모든 메시지는 암호화되어 해독할 수 없다. 광고나 투자를 받을 계획, 다른 기업에 판매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텔레그램이 내세우는 강력한 보안 정책은 반푸틴 세력을 감시하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성착취 현장에서 이 보안 정책은 애초와는 다른 의미로 추앙받았다.

한국에서 텔레그램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은 2019년 2월로,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수능 갤러리, 일간베스트 등 남성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가 이른바 ‘n번 방’ 사건 소식으로 들끓”던 시기와 겹친다. 이들이 n번 방 소식에 흥분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배경들이 존재한다. 2016년 소라넷 폐쇄, 2017년 〈일간베스트〉 몰락 시작, 2018년 웹하드 불법촬영물 단속 및 텀블러 성인물 업로드 금지 조치, 2019년 단톡방 성폭력 가해자 정준영 외 구속. 이런 배경 때문에 텔레그램에서는 “초대남” 모의, 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 불법촬영물 공유, 지인 능욕, “노예”까지 위 플랫폼들에서 문제가 된 모든 행위들이 목격되었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며 더욱 안전한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집단에게 텔레그램의 ‘철통 보안’은 빼어난 장점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n번 방’에 “노예”가 있다는 소식은 “야동 볼 권리”가 점점 축소되고 이것이 나아가 남성 인권을 해친다며 불만스러워하던 세력의 막힌 기를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 21세기에 무려 “노예”라는 반인륜 메시지를 버젓이 쓰는 데서 얻는 쾌감과 기대감을 따라 성착취 네트워크는 텔레그램으로 이동했다.

‘n번 방의 협박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시작은 ‘갓갓’이었다. 텔레그램 최초의 n번 방 운영자 갓갓은 “살색계” “일탈계” 등의 SNS 계정을 운영하는 여성들에게 해킹 링크를 보내거나 경찰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탈취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며 협박해 촬영물을 제작하게 했다. 이 방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10대 여성 청소년들이다.

3월 25일 자로 검찰에 송치된 ‘박사’ 조주빈 역시 협박으로 촬영물을 얻어냈다. 먼저 “스폰 매칭 알바” 구인 글을 올리고, 이를 보고 연락한 여성의 SNS 계정을 털어 가족이나 친구 등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 뒤 “매칭남”을 소개하고 “면접”을 구실로 얼굴 사진부터 시작해 점점 수위 높은 촬영물을 요구하는데, 여성이 이를 거부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협박이 시작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촬영물은 입장료 20만∽150만 원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에 올라갔다.

이들의 협박이 어떻게 성립되어 “노예”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려면 n번 방의 모든 최초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 새삼 주목해야 한다. 두 운영자 모두 피해 여성의 촬영물을 주위에 유포하겠다며 궁지에 몰았고, 이 협박은 여성들을 세게 압박했다. 유포 협박에는 많은 장치가 필요 없었다. “나는 네가 스스로 찍은 너의 몸 사진을 가졌다”는 말은 피해자에게 “문란한/음란한 여자”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두려움을 조장한다. 이 두려움은 몹시도 합리적이다. 심지어 법원에서 성폭력으로 판결한 사건의 피해자조차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피해자 낙인찍기는 갓갓과 박사 집단의 협박을 조력하는 공모자였다.

n번 방의 흥행 이후 텔레그램에는 수많은 방들이 파생되기 시작했다. 지인능욕, 화장실 불법촬영 모음, 합성 사진 등 여러 방들이 취향에 따라 만들어져 커뮤니티를 이뤘다. 한창때는 방마다 적게는 몇 백 명, 많게는 몇 만 명이 모여 성폭력물을 유포하고, 품평하고, 모의했다. 이들은 2019년 11월경 텔레그램 성착취가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도 겁먹기는커녕 해당 기자의 SNS 계정을 털며 조롱했을 만큼 ‘잡히지 않는다’는 자신감 아래 플랫폼이자 커뮤니티로서 똘똘 뭉쳤다.

텔레그램 성착취 양상

텔레그램 방들에서는 불법촬영물 유포, 지인능욕, 합성사진 제작 및 유포 등의 사이버성폭력이 매분매초 발견됐다. 이들에게 불법촬영물은 여전히 ‘몰카’이고 때로는 ‘트로피’이며 주제가 있는 ‘사진첩’이기도 했다. “따먹은 여자”를 자랑하기 위해 보여주는 사진, 클럽에서 몰래 찍은 사진, 에스컬레이터 등 공공장소에서 치마 속을 찍은 사진 등이 두려움 없이 오갔고, 정성스레 편집한 사진첩은 매매되기도 했다.

합성사진은 사용자가 제작해 배포 가능한 텔레그램의 스티커 기능을 타고 더욱 흉악하게 쓰였다. 이들은 피해촬영물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 연예인 합성사진 혹은 어린이 사진을 스티커로 만들어 아무 때나 툭툭 던지며 놀았다. 성적 요소가 전혀 없는 평범한 사진도 텔레그램 방에 등장하는 순간 새로운 뉘앙스가 생겼다. 스티커에 등장하는 여성의 생사는 이들에게 가십이었다.

지인능욕은 온라인 성착취 네트워크의 본질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범죄다. n번 방을 비롯한 텔레그램의 여러 방들, 나아가 성착취 가해 집단이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은 여성의 신상에 대한 집착이다. 실제라면 더할 나위 없고 허구라도 상관없다. 개인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묘사해 생생히 살아 있는 여성을 만드는 것은 이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성착취의 핵심 기저는 성욕이 아닌 능욕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성욕을 “성적 행위에 대한 욕망”, 능욕을 “「1」 남을 업신여겨 욕보임, 「2」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를 비롯해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고 아래에 포르노그라피 텍스트를 덧붙이는 지인능욕은 성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박사방의 ‘복종’ 키워드도 마찬가지다. 갓갓과 조주빈이 보인 허황한 자신감과 가학성은 ‘지배하는 남성’을 바라는 집단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좀비 남성성

소라넷에서부터 텔레그램까지, 사이버성폭력의 패턴과 이동 경로에서 보이는 이들의 남성성은 ‘좀비’에 가깝다. 사라지지 않는 좀비 떼처럼 무리 지어 몰려다니며 먹잇감을 찾는 양상 때문만은 아니다. 성착취 네트워크는 한 번도 쟁취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미지의 남성성을 실현하는 장이다. 채워지지 않는 좀비의 배고픔처럼 그들이 ‘성욕’이라고 오해하는 허기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반죽음 상태의 남성성은 살아 있는 여성을 좇고 해치며 인간성을 잃는다.

좀비 남성성은 존재하지 않는 남성성을 따르므로 스스로 실천되지 못하고, 오직 대상화를 통해서만 구현된다. 일상적인 사진을 포르노그라피와 합성하는 행위, 대다수 여성이 암암리에 성을 판매하며 이것이 여성의 비도덕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기는 망상, 여성 안에 잠재된 욕망을 이끌어낸다는 조주빈의 헛소리 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과정이다. 이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은 그들의 “인터넷 밈”, 즉 피해자를 스티커로 만들어 쓰는 등의 커뮤니티 놀이문화다.

여성의 인격을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에서 서열은 누가 얼마나 더 여성을 능욕하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서열은 방장과 관리자를 제외하면 시시각각 바뀌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참가자들은 누군가가 전해주는 ‘딸감’을 수동적으로 받아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담했다. 더 포악한 이미지를 올리는 자, 더 비인간적인 언어를 쓰는 자가 몇 초의 주목을 받고 사라지면 이와 상응하거나 더욱 거센 폭력이 등장했다. 대화방이라는 특성과 집단이라는 성질이 만나자 사이버성폭력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이런 일들이 60여 개의 방들에서 하루 종일 동시에 벌어지는 것을 보면,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온라인 갱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떤 목적을 가진 집단이 시스템을 갖추어 특정 집단 괴롭히기를 반복할 때 어울리는 이름은 조직범죄다. 텔레그램 성착취 네트워크는 방을 관리하기 위해 서열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고, 심사를 거쳐 참가자를 선정하는 등 조직범죄의 면모를 갖추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어떻게 끝낼 것인가?

지금 텔레그램에는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볼 권리를 핍박받는다는 억울함이 널리 퍼져 있다. 조주빈 검거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곳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한 결과다. 그러니 텔레그램 방에서 “페미들 때문에 텔레그램이 망했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은 실은 올바른 분석이다. 올해 2월 7일, 경찰이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 66인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더 많은 방들이 폭파되었고, 텔레그램에는 운영자 “대책회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들이 오갔다. 박사가 검거된 뒤에는 더 많은 방들이 사라졌지만 아마 이들은 어디서든 좀비처럼 다시 기어 나올 것이다. 벌써 ‘n번 방’ 자료가 매매되고, 성착취 네트워크가 디스코드로 옮겨 가고 있다는 소식도 진작부터 전했다.

온라인 성착취 네트워크를 끝장내려면 조주빈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조주빈은 악마가 아니다. 그는 숱한 성착취 범죄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민되기에 실패한 남성일 뿐이다.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도, 성격도, 외모도, 친구도, 가족도, 취미도, 옷도 궁금하지 않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오로지 검찰과 법원과 사회가 그를 어떻게 벌할 것인지다. 조주빈 이전의 수많은 가해자들을 너그러이 방면해온 검찰과 법원은 성착취 네트워크를 유지시킨 강력한 원인이다.

이제 조주빈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가능한 한 모든 법을 동원해 조주빈을 가두려 애써야 하고, 법원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임을 천명해야 한다. 26만 명이든 2만 명이든 모든 공범도 일일이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 함은 더 말할 필요 없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거둔 범죄 수익에 추징금과 배상금을 물려 파산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착취로 이윤을 보는 자들의 진짜 공포는 ‘돈’이다. 곧 출소를 앞둔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와 고작 징역 1년을 선고받은 ‘n번 방’ 승계자 역시 성착취를 사업으로서 시작했다.

좀비 남성성의 성착취에 맞서는 반사이버성폭력 운동은 〈킹덤〉 시즌 10을 찍는 마음으로 끝까지 갈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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