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활동가 인사

눈 내리는 날 사무실 근처 산책로에서

안녕하세요. 2021년 1월부터 함께 하게 된 신입활동가 유영입니다. 어떻게 저를 소개하면 좋을까요. 활동가라고 하니까 괜히 무겁고 심란해지네요.

사실은 신입활동가가 아니라 신입 인턴으로 소개하려 했습니다. 고용형태가 인턴이기도 하고요. 아직은 저를 활동가로 소개하는 게 멋쩍은 것 같습니다. 제 안에서 활동가는 운동에 막막 헌신하고 지향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너무 멋진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활동가라고? 띠용

비밀을 하나 고백하자면, 오랜 시간 저의 술자리 건배사는 “연결될수록 강해진다.” “정신병이” 였습니다. 너의 문제가 나의 문제와 맞닿아있음을 알고 서로 연대하며 연결될 때 우리 사회의 거대한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하지만요. 가끔은 고통스러운 가운데 피워내는 성찰이 반짝반짝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못 듣겠다 못 읽겠다 싶은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아우성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곁을 지키겠다고 결의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이 세상은 답이 없다. 분리주의 해야 된다. 아니다. 분리주의도 아니다. 사람이 문제다. 라는 생각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작년에는 이사를 했더랬죠. 길거리에 사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논밭과 새, 고양이가 보이는 읍면리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 왕복 5시간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개입해야 하는 직장을 다니게 되다니 세상살이는 정말 알 수가 없네요.

요새 평일에는 50분, 주말에는 2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movement말고 exercise 말이에요.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거나 잘하는 건 아닌데 더 이상 못 일어날 것 같을 때라도 제 몸에 붙은 습관이 나를 일으키길 바라면서 걷고 뛰고 오르고 스쿼트랑 플랭크로 일상을 만들고 있어요.

여성단체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것도 저에게는 운동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내가 상근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고민했지만 지금 당장은 어울리지 않더라도 그 공간에서 일하며 그 모습으로 저를 만들어가고 싶어서. 이 단체에 기여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 혹은 잘 알아서, 좋아해서 상근자가 되었다기보다는 멋진 사람들 곁에 저를 두고 그곳의 가치를 체화해 페미니즘을 때려치울 수 있는 공부 같은 것이 아니라 제 삶으로 껴안고 싶어서 상근 제의를 덥석 물게 되었습니다.

전국연대에서 일하며 많이 배워가고 싶습니다. 전국연대에 늘 궁금했거든요. 어떻게 2006년부터 2021년 지금까지 (뭉치의 시작이 2006년인 거지 제대로 따져보자면 더 오랜 시간일) 운동의 파트너로서 당사자와 활동가로 관계 맺을 수 있는지, 말하기를 독려하고 경청하고 뭉치라는 운동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곁을 지켜왔는지. 타자와 차이를 위계를 뭉개지 않고 단죄하지 않고 함께 살기. 성장하기 전국연대에서 일하면 배워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의 출근이 기대됩니다.

에구 신입활동가로서 열의를 보이며 이 단체를 위해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포부를 드러내야 할 것 같은데 어렵네요. 그저 부족한 사람 품어주시고 배울 수 있는 기회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외에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뚝딱거리겠지만 잘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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