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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에 실린 기사

“술 시중한다고 인권도 없나요”… 2차 거절에 폭행 동물취급 2010-08-06 오후 5:32:13 /

지난 2일 오후 부산 서구 토성동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 30대 여성 2명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산 해운대의 한 대형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여성들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 한 달이 걸렸다는 것이다.

함께 일했던 한 여성이 익명의 편지를 살림으로 보냈고 살림 측과 취재진이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내 이날 살림 사무실에서 만남이 이뤄졌다.

A(30·여) 씨는 지난 6월 30일 이른바 ‘2차’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A씨는 코뼈가 부러지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손님과 업소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함께 온 B(31·여)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B씨도 과거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당시 도망치듯 업소를 떠났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A씨와 함께 손님과 업소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성매매 집결지의 한 업소에서 한 성매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소식이 A씨에게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신도 최근 손님에게 폭행을 당해 ‘죽을 지도 모른다’라는 공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손님은 A씨가 성매매 요구를 거절하자 A씨의 얼굴과 몸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비명 소리에 달려온 직원들 덕분에 폭력은 멈췄지만 업소 측은 맞은 A씨보다 손님을 먼저 신경썼다. A씨는 혼자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너무 부어서 당장 수술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손님은 사과 한마디 없었고 A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물질적인 이득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성매매의 죄를 묻는다면 죗값을 받을 것”이라며 “다만 한 여성에게 지울 수 없는 수치와 모멸감을 준 사람의 죄를 명백하게 밝히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소 측도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경찰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요구하자 하루에 한 번씩 지운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속옷에 남은 손님의 DNA 분석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기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주변에 도움을 청했지만 “성매매 여성의 일이라 쉽지 않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인터넷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지만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기다리라’라는 내용의 답장만 받았을 뿐이다.

A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업소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나도 한 가정의 귀한 딸이며 존중 받아야 할 인권이 있는 사람”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 전문대 관광학과를 졸업한 B씨.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다가 비서 일을 시작했다.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하다 보니 100여만 원의 카드빚이 생겼다. 마침 친구가 “금방 돈을 벌 수 있다”라며 업소를 소개해 주면서 비밀스러운 ‘투 잡’을 시작했다. 카드빚만 갚고 그만 두려고 했지만 그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40여 평의 아파트가 남의 손에 들어갔다. 1억여 원의 빚까지 생겼다.

“그 상황에서 큰딸인 내가 어떻게 일을 그만두겠어요. 부모님에게는 회사에서 월급받았다며 생활비를 드렸죠. 가끔 목돈을 주며 보너스 받은 거라고 거짓말하고…….”

일을 시작한 지 2년 쯤 지났을 때 끔찍한 일을 겪었다. 한 손님과 모텔에 들어갔는데 3시간 동안 심한 폭행을 당했다. 울면 더 큰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다. 두 달 동안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B씨는 “너무 무섭고 수치스러워서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며 “혼자 떠나면 끝날 것 같아서 연락을 끊고 업소에서 도망갔다”며 울먹였다.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병원비 부담은 고스란히 B씨의 몫이었다. B씨는 성매매로 병원비를 벌다가 지난해 9월부터 그만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다. 지난 1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기사ㆍ사진=부산일보>

살림

지난 2일 오후 부산 서구 토성동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 30대 여성 2명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산 해운대의 한 대형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여성들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 한 달이 걸렸다는 것이다.

함께 일했던 한 여성이 익명의 편지를 살림으로 보냈고 살림 측과 취재진이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내 이날 살림 사무실에서 만남이 이뤄졌다.

A(30·여) 씨는 지난 6월 30일 이른바 ‘2차’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A씨는 코뼈가 부러지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손님과 업소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함께 온 B(31·여)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B씨도 과거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당시 도망치듯 업소를 떠났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A씨와 함께 손님과 업소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성매매 집결지의 한 업소에서 한 성매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소식이 A씨에게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신도 최근 손님에게 폭행을 당해 ‘죽을 지도 모른다’라는 공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손님은 A씨가 성매매 요구를 거절하자 A씨의 얼굴과 몸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비명 소리에 달려온 직원들 덕분에 폭력은 멈췄지만 업소 측은 맞은 A씨보다 손님을 먼저 신경썼다. A씨는 혼자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너무 부어서 당장 수술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손님은 사과 한마디 없었고 A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물질적인 이득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성매매의 죄를 묻는다면 죗값을 받을 것”이라며 “다만 한 여성에게 지울 수 없는 수치와 모멸감을 준 사람의 죄를 명백하게 밝히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소 측도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경찰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요구하자 하루에 한 번씩 지운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속옷에 남은 손님의 DNA 분석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기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주변에 도움을 청했지만 “성매매 여성의 일이라 쉽지 않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인터넷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지만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기다리라’라는 내용의 답장만 받았을 뿐이다.

A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업소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나도 한 가정의 귀한 딸이며 존중 받아야 할 인권이 있는 사람”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 전문대 관광학과를 졸업한 B씨.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다가 비서 일을 시작했다.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하다 보니 100여만 원의 카드빚이 생겼다. 마침 친구가 “금방 돈을 벌 수 있다”라며 업소를 소개해 주면서 비밀스러운 ‘투 잡’을 시작했다. 카드빚만 갚고 그만 두려고 했지만 그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40여 평의 아파트가 남의 손에 들어갔다. 1억여 원의 빚까지 생겼다.

“그 상황에서 큰딸인 내가 어떻게 일을 그만두겠어요. 부모님에게는 회사에서 월급받았다며 생활비를 드렸죠. 가끔 목돈을 주며 보너스 받은 거라고 거짓말하고…….”

일을 시작한 지 2년 쯤 지났을 때 끔찍한 일을 겪었다. 한 손님과 모텔에 들어갔는데 3시간 동안 심한 폭행을 당했다. 울면 더 큰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다. 두 달 동안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B씨는 “너무 무섭고 수치스러워서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며 “혼자 떠나면 끝날 것 같아서 연락을 끊고 업소에서 도망갔다”며 울먹였다.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병원비 부담은 고스란히 B씨의 몫이었다. B씨는 성매매로 병원비를 벌다가 지난해 9월부터 그만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다. 지난 1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기사ㆍ사진=부산일보>

살림

지난 2일 오후 부산 서구 토성동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 30대 여성 2명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산 해운대의 한 대형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여성들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 한 달이 걸렸다는 것이다.

함께 일했던 한 여성이 익명의 편지를 살림으로 보냈고 살림 측과 취재진이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내 이날 살림 사무실에서 만남이 이뤄졌다.

A(30·여) 씨는 지난 6월 30일 이른바 ‘2차’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A씨는 코뼈가 부러지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손님과 업소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함께 온 B(31·여)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B씨도 과거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당시 도망치듯 업소를 떠났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A씨와 함께 손님과 업소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성매매 집결지의 한 업소에서 한 성매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소식이 A씨에게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신도 최근 손님에게 폭행을 당해 ‘죽을 지도 모른다’라는 공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손님은 A씨가 성매매 요구를 거절하자 A씨의 얼굴과 몸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비명 소리에 달려온 직원들 덕분에 폭력은 멈췄지만 업소 측은 맞은 A씨보다 손님을 먼저 신경썼다. A씨는 혼자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너무 부어서 당장 수술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손님은 사과 한마디 없었고 A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물질적인 이득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성매매의 죄를 묻는다면 죗값을 받을 것”이라며 “다만 한 여성에게 지울 수 없는 수치와 모멸감을 준 사람의 죄를 명백하게 밝히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소 측도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경찰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요구하자 하루에 한 번씩 지운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속옷에 남은 손님의 DNA 분석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기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주변에 도움을 청했지만 “성매매 여성의 일이라 쉽지 않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인터넷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지만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기다리라’라는 내용의 답장만 받았을 뿐이다.

A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업소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나도 한 가정의 귀한 딸이며 존중 받아야 할 인권이 있는 사람”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 전문대 관광학과를 졸업한 B씨.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다가 비서 일을 시작했다.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하다 보니 100여만 원의 카드빚이 생겼다. 마침 친구가 “금방 돈을 벌 수 있다”라며 업소를 소개해 주면서 비밀스러운 ‘투 잡’을 시작했다. 카드빚만 갚고 그만 두려고 했지만 그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40여 평의 아파트가 남의 손에 들어갔다. 1억여 원의 빚까지 생겼다.

“그 상황에서 큰딸인 내가 어떻게 일을 그만두겠어요. 부모님에게는 회사에서 월급받았다며 생활비를 드렸죠. 가끔 목돈을 주며 보너스 받은 거라고 거짓말하고…….”

일을 시작한 지 2년 쯤 지났을 때 끔찍한 일을 겪었다. 한 손님과 모텔에 들어갔는데 3시간 동안 심한 폭행을 당했다. 울면 더 큰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다. 두 달 동안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B씨는 “너무 무섭고 수치스러워서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며 “혼자 떠나면 끝날 것 같아서 연락을 끊고 업소에서 도망갔다”며 울먹였다.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병원비 부담은 고스란히 B씨의 몫이었다. B씨는 성매매로 병원비를 벌다가 지난해 9월부터 그만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다. 지난 1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기사ㆍ사진=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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