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성명]’낙태죄’ 정부 개정안 입법 예고에 부쳐 여성의 목소리와 현실을 삭제하고 실질적 ‘처벌’로 여성인권의 퇴행을 선택한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연대성명]

‘낙태죄’ 정부 개정안 입법 예고에 부쳐

여성의 목소리와 현실을 삭제하고

실질적 ‘처벌’로 여성인권의 퇴행을 선택한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정의와 평등 실현이라는 열망과 염원으로 탄생한 촛불정부이자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는 여성시민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낙태죄 전면 폐지’라는 시대적 과업을 포기하고 여성인권을 퇴행시킨 정부라는 역사적 평가를 자초했다.

오늘 발표된 정부 개정안은 낙태죄 처벌조항은 그대로 유지하고 ‘낙태의 허용요건’ 조항(안 제270조의 2)을 신설하여 처벌·허용 규정을 형법에 일원화했다. 세세하게 허용 기준을 나누고 안전한 임신중지 접근을 방해하는 상담의무와 숙려기간, 의사의 의료거부권까지 포함하여 가장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여성들이 받게 될 위험을 높이고 외면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에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성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한 사람의 시민이 아니라 남성과 국가가 통제해야 할 혹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위배되며, 2012년 ‘낙태죄’ 합헌 이후 논의되었던 정책대안들 보다 후퇴하여 실질적인 ‘처벌’을 부활시키는 참담한 입법이다.

삭제되어야 할 것은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가 아니라 ‘낙태죄’이다.

정부는 여성들을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존재로 낙인찍는 일을 멈추라.

정부는 원치 않는 임신이 왜 생기는지, 왜 사람들이 출산을 자신들의 생애 계획으로 결정하지 못하는지 여성의 현실을 직시하라.

정부는 국가의 생명 보호 책무 방기를 여성에 대한 낙인으로 대체하고 면피하려는 술책을 멈춰라.

그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로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에서 낙태죄 조항을 전면 삭제하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포함한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 마련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여성들은 과거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에서도 여성을 종속시키고 억압해온 호주제를 폐지시켰다. 우리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가장 절실한 여성들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개정안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여성들은 형법에서 ‘낙태죄’가 전면 삭제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워 승리할 것임을 천명한다.

2020년 10월 7일

한국여성단체연합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독여민회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대전여성단체연합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단체연합 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수원여성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전북여성단체연합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천안여성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한부모연합 함께하는주부모임

성명/보도자료

낙태죄 폐지되던 날-재판 방청기

[방청기] 낙태죄 위헌 선고날을 역사에 아로새기며

지혜(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2019년 4월 11일 하루 전에 헌법재판소 선고방청이 확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교과서나 신문에서 들어본 곳, 내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이면 방청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신청을 했다. 낙태죄 위헌 선고가 밝혀질 역사적인 날인만큼 나 이외에도 신청한 인원이 많을테니 추첨이 될 거란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확정 문자를 받고는 기뻤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헌법재판소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2004년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 싸우는 여성들을 보았다. 뉴스보다는 개그프로그램이 더 좋았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김미화로 불리던, 여성 연예인이 선두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 당시 호주제의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렸다는 변명으로 그 장면은 이내 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호주제 헌법불합치 선고가 있던 날 브라운관을 통해 그가 매우 기쁨에 차 우는 모습을 보았다. 무엇이 예능 연예인에서 개그무대를 박차고 나오게 한 것일까, 그는, 여성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것일까, 그리고 그 날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날이었는지는 그로부터 한참 후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 지혜에서 반성매매 여성주의 활동가 지혜가 되어서야 나는 헌법재판소 앞에 서서 낙태죄 폐지 시위를 하고, 헌법재판소 선고방청을 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 앞에 서서 릴레이 기자회견에 참여하면서, 약 1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교차해서 보았다. 낙태죄 폐지를 눈앞에 둔 역사적인 날을 되새길수록 손가락 끝부터 감각이 새롭게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는 내가 기억하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여성주의자들이 다져온 곳이며, 역사의 흐름에 내가 있다.

1시가 넘었을 무렵 헌법재판소의 심판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판장 내부를 촬영하려는 언론사들이 먼저 입장하였고, 그 뒤로 시민방청이 줄을 섰다. 헌법재판소 심판정은 일반 법정보다 더 큰 규모에 장식도 화려했다. 그 위용은 헌법재판소가 다루는 사건이 매우 특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낙태죄 위헌 여부를 다루기 이전에 15개의 사건들을 들으면서 점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낙태죄 사건이 차례가 되었을 때 헌법재판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문,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함”

심판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 소식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하는 눈빛으로 헌법재판관의 선고 이유에 집중하였다. 나 또한 급하게 이유를 받아적고 단체 사람들과 지인들에게 판결을 알리며 축하했다.

반성매매 운동에서 낙태죄 폐지는 성매매 피해여성이 겪는 문제를 한 꺼풀 벗겨낸다. 성매매 피해여성은 낙태죄에 의해 임신중지를 할 수 없다. 사회는 성매매 피해여성을 ‘동등한 거래주체’로 간주하며,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모든 위험을 ‘마땅히 감수해야할 것’으로 방조하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자기 몸의 결정권을 획득하는 성취의 경험을 안긴다.

심판장 밖을 나오니 헌법재판소 앞은 축제의 분위기였다. 낙태죄 폐지를 염원하는 구호를 외치고, 서로를 독려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응원의 말들을 나누었다. 한 친구는 내게 이런 역사적인 날을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그리고 여성주의 활동가 친구를 곁에 두어서 기쁘고 고맙다는 말을 해줬다. 그 말을 듣고 코끝이 울렸다. 나는 아직 신입활동가의 티를 벗지 못했지만, 이런 순간을 활동가로서 맞이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앞서 여성주의의 길을 간 선배들에게 고맙다. 낙태죄는 헌법불합치, 사실상 위헌 선고를 받았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여성건강권과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성취할 수 있도록 임신중지를 합법화하고, 성매매 여성을 비범죄화 하라! “우리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활동소식

낙태죄폐지되는날 헌법재판소앞에 함께했습니다

[입장문]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
국회와 정부는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성평등 사회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다. 여성의 존엄성,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던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들 모두의 승리다.

66년간 형법에 존재했던 낙태죄에 대한 이번 결정은 국가가 발전주의를 앞세워 여성의 몸을 인구 통제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삼았던 지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로써 형법상 낙태죄의 허용한계를 규정해 온 모자보건법 제14조 또한 그 의미를 상실하였다. 그동안 국가는 모자보건법상 허용한계를 넘는 경우 여성들의 임신중단 결정을 단죄함으로 여성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낙인을 강화해왔다. 이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명백한 통제이자 폭력이었다.

이러한 형법상 낙태죄 조항들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조항이라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불법과 낙인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임신중단이라는 자신들의 경험을 인권의 문제로,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낸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과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여성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논의 프레임의 한계 속에서도 재생산권 보장의 관점에서 임신중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낙태죄에 대한 새로운 논의 구도와 사회적 인식 변화를 만들어냈다. 오늘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러한 여성들의 분투의 성과이자 여성운동의 역사적 진전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는 성평등 사회를 위한 또 한걸음을 내딛는다. 이제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강요와 처벌에 의한 강제적 재생산이 아닌, 재생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풍토와 기반 마련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한다.

재생산권은 성적자기결정권 및 출산의 선택권을 포함하고 그 결정에 있어서 성평등 권리까지 포함한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의 성평등은 물론 공동체와 국가에게도 공동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여성연합이 지난 개헌 논의에서 재생산권을 헌법의 기본권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국회와 정부는 젠더 관점의 성과 재생산 교육을 포함해 안전하게 성적 권리를 누리고 피임,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한 정보와 보건 의료 시스템에 모두가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안전한 임신중단권 보장을 위해 유산유도제의 도입과 관련정보 및 의료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법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헌법불합치라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국가는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책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2019년 4월 11일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기독여민회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부산성폭력상담소 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수원여성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천안여성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한부모연합 함께하는주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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