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이슈체크]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반드시 필요하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반드시 필요하다.

2021년 4월 27일, 혼인·혈연·입양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현행 법률을 개정하고 동거·사실혼 부부, 돌봄과 생계를 같이하는 노년 동거 부부, 아동학대 등으로 인한 위탁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여성가족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앞으로 5년간 가족정책 추진의 근간이 될 이번 기본계획은 가족 형태 다변화와 개인 권리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다양성과 보편성, 양성평등을 중시하는 정책을 담고 있다고 한다. 1)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는 이번 정부의 발표를 환영하며, 국회에서도 계류되어 있는 건강가정본법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건강가정과 취약가정의 위계를 깨고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을 정책 법안에 품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복지정책을 마련할 때 실제 그 사람이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예산을 집행할 최소단위로 ‘가족’을 두어 정책을 마련해왔다. 그 결과 복지망에서 누락되는 사람들이 생겼다. 코로나 19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사례가 그렇다.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가구 단위로 세대주에게 지급해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가족과 같이 살고 있더라도 가족 내부에 위계가 있는 경우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 못했다. 2)

실제 삶과 무관한 가족을 정책 집행할 최소단위로 보면서, 다양한 개인들을 법적 제도적 복지망에서 미끄러뜨리는 한편, 연예인 ‘구하라’씨처럼 혈연과 혼인으로 이어진 가족만을 가족으로 보는 정책 속에서 핏줄만 가족일 때 생기는 권리와 책임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3) 여성인권센터 보다가 2020년에 발간한 도서 <바다 위 정류장> ‘별님’의 글 4)에서 살펴볼 수 있듯 수술 동의서는 혈연가족이나 배우자만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별님은 딸이 퇴원하는 날 택시비를 내는 것마저도 아까워하는 사람에게 피로 이어진 ‘엄마’라는 이유로 연락해야 했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긴밀한 경제공동체를 전제로 가족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정상 규범으로 지원해온 정부 정책이 있기에 폭력에 노출된 가족 구성원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가정폭력의 해결의 목표는 피해자를 폭력으로부터 구제하고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생긴 가족을 다시 정상가족으로 봉합하는 것이 되었고 피해자에게 가해자와의 관계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 해결 절차가 되었다.

이렇듯 한국사회의 가족정책이 내재한 문제가 다양해 2004년, 국가인권위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이후 2006년과 2015년 건강가정기본법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하다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또 한 번 2020년, 더불어민주당 남인숙, 정춘숙 의원에 의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21년인 지금도 끝없는 답보상태다. 2021년 5월 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상정되었지만 이날 여가위 법안심사소위는 1시간 20여 분 동안 2개 조항 심사도 마치지 못한 채 끝났다. 5)

성매매 여성을 만나고 지원하는 현장에서 이번 건강가족기본법개정 물꼬는 각별히 의미가 있다. 성매매 여성은 많은 경우 가정폭력 혹은 가정해체를 경험하고 경제적, 심리적으로 고립되며 성산업에 유입된다. 6) 이들은 온전히 홀로 자신의 삶을 견디며 살고 있음에도 서류상 가족이 있고 가족의 소득이 잡히면 부양하는 자가 있다고 여겨져 수급지원에서 탈락된다. 조건만남을 하는 청소년의 경우 청소년이 있어야 할 곳은 가족의 울타리라고 보는 가족 정책 때문에 쉼터에 입소하면 원가족에게 자신의 소재지가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며 가족으로부터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업소를 대안으로 고르게 된다.

건강가족기본법 개정을 통해 성매매 여성을 지원할 때 더 많은 선택지를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가족으로부터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로 나온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돌아가야 하는 공간으로 상정한 건강가족기본법이 아니라 이들의 욕구를 듣고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이 필요하다. 가족구성원에게 부담을 지우고 옭아매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을 넘어 다양한 가족들이 정부 정책에 포용되고 가족의 의미가 확장될 수 있도록, 국회는 건강가족기본법 개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

2021.05.21.

1) 폴리뉴스 “비혼·동거도 가족” 가족 개념 넓히는 여가부…자녀 성은 부모 협의로
2) 미디어오늘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의 다섯 가지 문제점’
3) 시사인 ‘가족’ 한계 인정한 정부, 다양성 포용 우선순위로
4) 여성인권센터 보다 <바다 위 정류장> - 마음이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5) 한겨레 법으로 이혼예방? 시대착오적 ‘건강가정기본법’…개정논의 시작부터 ‘전운’
6) 십대여성인권센터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실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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