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바다 위 정류장> 연재 6.

[도서] <바다 위 정류장> 연재 5.

[도서] <바다 위 정류장> 연재 4.

[도서] <바다 위 정류장> 연재 3.

[해봄소식] 4월의 해봄 소식

<해봄> 참여자이신 ‘달꽃’님과 ‘봄 오는 날’님께서 4월에 있었던 해봄 활동에 대해 감상을 써주셨어요.

‘달꽃’님 ‘봄 오는 날’님 감사해요!

[도서] <바다 위 정류장> 연재 2.

[도서] <바다 위 정류장> 연재 1.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지 않아 읽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아주 조금씩, 한 달에 한 편씩 뉴스레터에 도서 <바다 위 정류장>에 실린 해봄 선생님들의 글을 부분 발췌하여 연재하려 합니다. 
1편은 ‘해’님의 ‘깊은 터널속의 나’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해봄소식] 한 해 마무리 평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평가회의 날입니다. 해봄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시와 눈물과 웃음과 함께하는 평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아래는 해봄 참여자님이 보내주신 해봄 감상문입니다. 올 해 함께 해서 즐거웠어요 선생님!

여성인권센터 보다를 통해 다니던 업소를 그만두고 세상으로 한 발짝 걸어가려고 하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이 불규칙해졌습니다. 담당 선생님과 상담 중 해봄이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난해 3월 해봄 프로그램에 등록하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보다 생계가 더 급했던지라 활동비에 더 관심도가 높았습니다.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 출근하신 대부분 참여자들이 저와 비슷한 상황이란 걸 짐작했고 제가 나이가 많은 쪽에 속에 있다는 걸 짐작했습니다.

처음엔 손뜨개 강사님을 초대해 손뜨개를 배웠습니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에 웃음도 터졌고 강사님까지 초대해 배워본 적 없는 것을 배우니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캔들.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었고 참여자들이 각자의 취향에 좋은 향을 하겠다며 이야기도 하고 웃고.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출근을 못하고 재택 활동으로 필사를 하게 되었죠. 워크숍으로 제주도도 일정에 있었지만 가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있는 서울 걷기 프로그램으로 여기저기 구경도 하며 바람도 쏘이고 대만족이었죠. 확산이 꺾여 출근하니 새로운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피포페인팅 그림을 그리니 참여자들 집중도와 만족도가 얼마나 높던지.. 또다시 코로나로 인해 사무실로 출근하는 대신 필사를 하였습니다. 후반기엔 비즈십자수도 하고 전주 선미촌도 가고 추석엔 선물도 받고 글짓기 강사님, 영화 평론가 강사님 등등 많은 강사님들의 강연도 들을 수 있었죠. 너무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참여자들이 직접 쓴 글짓기가 책으로 나왔다는 거예요. 줌 영상으로 글짓기를 서로 강독하고 공감하며 울기도 하고 도닥여 주기도 하고 그로 인해 모두들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습니다. 해봄 선생님들도 참여자들의 글짓기를 보면서 저희보다 더 공감하며 우는 모습에 감동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봄을 출근하는 날이 기다려지고 그곳의 선생님들과 참여자들이 보고 싶기도 하여 지더군요.

그러다 12월. 1년을 마감하며 모이는 날. 왜인지 모르게 얼마나 서운하던지.. 해봄을 다니며 일일이 나열하지 못한 촘촘한 프로그램들을 하며 세상에 한 발짝 나가려는 모든 참여자들과의 만남과 소통 속에 저는 지난 한해 저도 모르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생각들 그에 따른 말투, 심리적인 안정, 사람들과의 건강한 교류. 모든 것들이 너무너무 유익했습니다.

프로그램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참여자들이 해봄 프로그램으로 인해 세상에 한 발짝 나아가는 그런 해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해봄 소식] <바다 위 정류장> 발간

2020년 크리스마스 이브, 해봄에서 발간한 <바다 위 정류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힘들어도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글을 퍼올린 해봄 선생님들, 가장 가까이에서 누구보다도 성실히 열심히 애쓰셨던 담당자 하랑샘, 묵묵히 곁은 내주고 응원해줬던 보다샘들과 글짓기를 위한 벽돌을 만들 수 있도록 글쓰기 강연을 맡아주신 희정샘, 고전을 다시 함께 읽으며 성찰하는 걸 곁에서 도운 조이스박샘,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의 노고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조이스박님이 써주신 추천사입니다.

제가 이 추천사를 쓸 자격이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좁디좁은 세계에 살아온 내가 공감의 다리를 건너 누구에게 닿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조차 나의 선한 면을 확증하려는 위선이 아닐까 망설이게 되고, 아직도 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까지가 구속인지 헷갈리는 미욱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상처에 대해서는 알 것도 같습니다. 제가 아는 아픔과 슬픔은 그래요. 싸울 때에는 때리거나 찔러오거나 베어오거나 하는 힘에 맞서느라 긴장하고 힘을 끌어 모아 방어하거나 저항하기 때문에 외려 아프거나 슬픈 걸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긴장이 풀리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바쁘고 힘든 와중에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우루루 살아나서 나를 힘들게 하더군요. 상처에서 살아남은 다음에 비로소 내게 사람들이 내게 준 상처들을 꺼내어서 복기하게 되는데, 이건 마치 날을 벼리지 않은 뭉툭한 칼로 내 마음이 해어질 때까지 그어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왜 난 그 때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왜 난 미련한 짓을 한 걸까 자책하는 마음도 더해져서, 다 해어진 마음의 막이 터지면 가두어둔 댐이라도 무너지듯 나를 휩쓸어갈 홍수가 날 것도 같았습니다. 행여 마음이 터져 홍수가 나면 내 정신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애써 마음을 부여잡고 버티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살아남은 이후에 어쩌면 마음이 더 힘들었는데, 시간이 더 지나고 알게 되었어요. 이 시간들 동안 아팠던 건, 돌로 된 마음을 살로 된 마음으로 다시 빚는 과정이라 아팠던 거라는 걸요. 돌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강한 것 같지만 부서져 버리거나 터져 버리고 하냥 거기 그 자리에 있는 마음 밖에 못 만들지만, 살은 느껴서 아프고 연약한 것 같지만 부서지거나 터지지 않고 새 살이 돋아가며 자라고 늘어나 앞으로 나를 데려가는 마음이라는 걸요.

살아남은 이들이 글을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해요. 느끼지 않으려고 애썼던 과거의 많은 일들을 이제 느끼며 새삼스럽게 많이 아팠을 것 같아요.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며 망설였던 흔적과 쏟아내고 숨을 돌리며 찍어놓은 쉼표 하나하나에서, 아픔과 슬픔, 회한과 불안, 희망까지도 읽었어요. 글을 쓰는 과정이 참여하신 분들께 살로 된 마음을 입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글로 써내느라 겪은 아픔을 역설적이지만 축복해요. 이제 살로 된 마음으로 세상을 사실 수 있기를. 연약한 살이라 울고 아프고 할 일들도 있겠지만 동시에 웃고 기뻐할 일도 있으실 테니까요.

생명은 멈추지 않고 자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믿습니다. 마음은 그렇게 계속 자랄 거예요. 그리고 살로 된 마음을 입은 자들은 이제 자신을 안아줄 수도, 손을 내밀어 다른 이들의 손을 맞잡을 수도, 더 나아가 넘어진 이들에게 붙잡으라고 내밀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내기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가실 길을 더욱 축복해요. 그리고 이제부터 절대 혼자가 아니실 거예요. ‘보다’의 사람들과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글쓴이들을 응원하니까요.

사랑을 담아,조이스 박

[해봄 소식] 해봄, 전주 성평등센터에 가다!

보다는 지난 11월 11일,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직전, 해봄 프로그램 참여자들과 전주 성평등센터에 방문했습니다. 전주의 일명 ‘선미촌 집결지’는 60여 년 된 전북의 대표적 집결지였습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는 전주시와 함께 2017년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집결지가 있던 자리에는 여성인권을 기억하는 <성평등 전주> 센터가 생겼습니다. ‘해봄’에서는 이곳을 방문하여 아직 남아있는 집결지를 걸으며 새로운 변화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집결지가 모여있던 전주 선미촌을 다녀왔다. 그곳엔 투명한 유리속 의자가 남아있는데 그자리 옆에 난로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제 더이상 그곳에는 언니들도.. 업주도.. 손님도.. 남아있지 않지만 난 느낄수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얇은홀복 하나 걸치고 난로 하나에 추위와 고독을 간신히 버티며 높디높은 굽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벌벌 떨고있는 살기위해 그저 하루를 더 살아가려고 또는 가족을위해 본인을 버리고 희생하고 그곳으로 출근해 일을하고있는 언니들의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참담하고 울컥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골목골목으로 옮겨 이동하는데..

초등학생들이 벽돌 하나하나에 정성스레 남긴 글귀로 빼곡히 벽면하나를 채운곳이 있었다. 사랑해 넌할수있어, 포기하지마, 지금 하고있는 일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입니까?, 내꿈은 치과의사입니다, 넌잘할수있어 힘내, 사는것 입니다, 너무잘한다, 엄마아빠사랑해요

이러한 글귀가 쓰여있었는데 내마음이 내심장이 갑자기 너무아려왔다. 저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저렇게나 예쁜 마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내게 필요했던 말을 모조리 해주고있었다.

전주 선미촌에는 이제 더이상 아파할 고통받을 언니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흔적만은 영원히 남아있고, 우리는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고 같이 슬퍼하고 아파할것이다. 아무도 그곳을 없애지 않고 보존하고 그아픔을 나누고 그고통을 잊지않고 평생 길이길이 간직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