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여성 인권운동가 故김애란 선생님 여성장 안내]
관리자
2025-07-30
조회수 84

[기지촌 여성 인권운동가 故김애란 선생님 여성장 안내]
1. 기지촌 여성 인권운동가 김애란 선생님께서 지난 7월 25일 향년 75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사망 후에는 미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공개해주길 원하셨던 김애란 선생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삶을 많은 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2. 김애란 선생님은 열다섯 살이었던 1965년 직장을 소개해 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속아 파주 용주골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었습니다. 김애란 선생님께서 기지촌에서 겪었던 미군 폭력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만큼 참혹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미군의 폭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구조할 국가는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죽임을 당할 뻔했고, 또 몇 번은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끝내 살아남으셨고, 1990년대 말부터 기지촌 여성 생존자들의 모임인 새움터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애란 선생님은 남은 평생 기지촌 여성들과 자녀, 기지촌 여성 인권운동가들의 언니로, 동료로, 이모로 사셨고, 우리 모두에게 큰 울타리이자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10년 넘게 새움터 쉼터에서 상처받은 피해자들을 먹이고 입히며, 그 곁을 따뜻하게 지켜주셨고, 그 후 10여 년은 새움터의 실행위원과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기지촌 여성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도록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 누구도 미군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싸움을 이어오셨습니다.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증인으로 직접 법정에 서서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을 폭로했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는 역사적 승소를 이끌어내셨습니다. 법정에서 김애란 선생님은, “정부는 우리에게 미군 위안부를 시켜놓고 지금은 나 몰라라 하고, 그런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언니들이 불쌍하게 죽어가고 있으니 하루빨리 정부가 우리에게 사과해야 합니다.”라고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 싸움으로 동료들과 함께 미군 범죄를 밝히는 소송을 준비하시던 중 2023년 건강 악화로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병상에서 일어서지 못하셨습니다. 김애란 선생님께서 병상에서 남기신 유언 중, 우리 사회에 남기신 내용을 전합니다.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들은 미군들에게 큰 고초를 당했습니다. 그걸 그냥 묻어버리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언니들의 한을 꼭 풀어야 합니다. 저는 몸이 아파 비록 소송을 할 수는 없지만, 내 동료들, 내 후배들이 저 대신 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당신들의 엄마, 자매, 딸이라고 생각하고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언니들이 몸이 너무 아픕니다. 기지촌에서 당한 험한 일 때문입니다. 하지만 병원비 걱정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병원비라도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아래와 같이 장례 일정을 안내드립니다. 많은 분의 추모와 조문을 부탁드립니다. 김애란 선생님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분의 노력과 헌신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 빈 소 : 송탄장례문화원(경기도 평택시 오리곡길 30)
■ 발 인 : 2025. 7. 31.(목) 09시 30분
■ 추모식 : 2025. 7. 30.(수) 17시 00분
■ 장 지 : 에덴추모공원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서이천로 449-82)
■ 주 관 : 기지촌 여성 인권운동가 故 김애란 선생님 여성장 장례위원회
고인의 뜻을 기리는 마음으로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합니다.
조문이나 추모식에 참석 하시는 분은 송탄역에서 연락주시면 차량으로 이동지원 가능합니다.
문의 : 새움터(031-663-4655), 새움터 고미라 대표(010-5377-7185)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