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개복동에 앉지 못하는 ‘나비’들의 영혼

개복동에 앉지 못하는 ‘나비’들의 영혼
2002년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
희생 여성 14명 기린 조형물 제작
주민 반발로 현장 아닌 학교 전시
전북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의 희생 여성을 상징하는 나비 모양의 조형물.
전북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의 희생 여성을 상징하는 나비 모양의 조형물.

2002년에 발생한 전북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의 희생 여성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만들어졌으나 현장에 세워지지 못하고 있다. ‘개복동 2002 기억, 나비자리’라는 제목이 붙은 이 조형물은 17일 오후 3시 군산시 월명동 산돌학교 안 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철로 만든 이 조형물은 가로 1.2m, 세로 0.3m, 높이 2.2m 규모다. 감금을 의미하는 쇠창살 위에다, 자유를 뜻하는 나비를 얹은 형태다. 어둠의 세계인 쇠창살을 부식시켜 녹이 슬도록 제작했고, 자유와 희망을 바라는 나비는 밝은 빛이 나도록 했다.

조형물을 만든 김두성(45) 전북민족미술인협회장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화재로 숨진 피해 여성들의 일기장을 보았다. 모두가 지금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고 싶다고 갈망했다. 희생된 여성들이 원했던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의 전봉준·손화중 장군상을 제작했고, 정읍 출신 독립운동가 백정기 선생의 부조도 만들었다.

군산시 개복동에서는 2002년 1월29일 성매매업소에서 불이 나 20대 여성 14명 등 모두 15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들의 희생으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도가 심각하다는 현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를 계기로 2004년 9월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됐다. 군산시는 2010년 개복동 화재 현장의 터 172㎡와 건물 2동을 매입했다. 하지만 이 건물들은 2013년 2~3월 노후화 등의 이유를 들어 철거됐고, 지금은 잔디가 심어진 상태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등 여성단체는 이곳을 여성인권을 교육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2013년 4월 군산개복동여성인권센터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기금 1000만원을 모았다. 지난해 9월엔 성매매방지법 시행 10돌을 맞아 이곳에 조형물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주민의 반발에 부딪혔다. 주민들은 “조형물이 좋지 못한 과거의 일을 들춰낸다. 우리도 피해자인데 개복동의 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설치는 안 된다”고 막아섰다.

조선희 건립추진위원장은 “화재 현장에 여성인권센터와 상징조형물의 건립을 추진했다. 예산이 많이 드는 여성인권센터 건립이 너무 어려워 상징조형물이라도 먼저 현장에 세우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와 군산시의 소극적 태도로 이제야 현장이 아닌 갤러리에다 전시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군산시는 여성단체들과 협의를 하겠다고만 밝혔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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