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연재6. 14명 죽은 이곳... 철거한다고 기억하지 못할까?

14명
죽은 이곳... 철거한다고 기억하지 못할까?

[성매매 여성 처벌, 이대로는 안된다⑥마지막]
성매매여성 참사지 군산 개복동

14.11.05 16:57l최종 업데이트 14.11.05 16:57l

빨간 간판들이 어두운 거리를 밝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거리. 유리창 안의 하얀 조명 밑에 파리해 보이는 여성들. 주변의 업주나
'삐끼'로 보이는 남자들이 행인들의 앞길을 막아서면서 "아줌마, 여기로는 못가요"라며 위협한다.

"왜 길을 못 가게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한쪽 시선은 유리창 너머의 여성들을 살펴보았던 곳. 유흥주점 간판을 내걸고 성매매를 해 온 군산 개복동 성매매 집결지의
모습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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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당시의 군산 개복동 거리.
ⓒ 전국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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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군산 개복동 화재 사고가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 화려했던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겉에서 보면 너무도 멀쩡해 보이는 유리창, 넓어 보이는 공간, 화려하게 불빛을
비추는 유흥주점들의 간판 속 내부는 너무도 참담했다. 밖에서 잠그는 잠금장치와 좁은 통로를 지나 가파른 철재 계단을 올라가니 2층으로 연결된
철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화재 당시, 불을 피하기 위해 이용해야 했던 1층 출입문은 밖에서 잠겨있는 상태였고, 2층으로
대피하려던 여성들은 잠긴 2층 철문 입구 계단에서 쓰러져 하나둘 숨을 거뒀다. 밖에서 보면 유리창인데 어찌된 건지 건물 내부는 모두 베니어 합판
위에 벽지로 막은 벽뿐이었다. 방에 있는 작은 유리창조차 판자로 가려져 있었다. 성매매여성들이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공간에서 힘들게 버텨오다
화재로 인해 생을 마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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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개복동 화재 현장 사진. 10년이 넘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던 내부 모습으로 녹슨
철제 계단 위로 보이는 철제문이 2층 출입문이다. 화재 당시 잠겨진 상태였고, 2층은 주택으로 신고된 곳인데 영업장이었다. 옆벽의 베니어합판을
뒤로 보이는 빈 공간이 밖에서 보면 유리창으로 보이는 곳이다.
ⓒ 전국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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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군산 대명동(5명 사망),
2002년 군산 개복동(14명 사망) 화재 참사로 모두 19명의 여성들이 사망한 이후 달라진 건 여성들을 감금했던 눈에 보이는 쇠창살이나 밖에서
잠글 수 있는 잠금장치가 제거된 것 그리고 (업주에 의해) 성매매를 암시하거나 입증하는 자료가 되는 장부나 일기장을 기록하지 못하게 된 것
등이었다. 

나는 오늘도 화가 난다. 그냥 화가 난다. 사는 보람도 없어, 하루라도 빨리 이런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늘도 마담언니, 사장님한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울지는 않을 거야. 나만 초라해지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동생들이
욕먹고 있어.

…비둘기야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언젠가 니가 나한테
이야기 했었지. 나갈 수 있냐고. 난 도무지 뭐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어. 입장이 난처했지.

정신적으로 힘든 하루였다. 모든 것이 짜증스럽다. 몸으로도 지쳐버렸다. 오늘 따라 집이 그립다. 부모가 보고 싶다.
눈물이 나오려고 그런다.

나만이라도 자유가 있다면 자주 만나면서 영화도 보고.
한적한 가로수 길도 걸으며, 공원에서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고, 사진도 같이 찍고, 추억을 남길 수 있으련만, 아쉬워. 세상이 미워져. 이건
불공평한 거야.

- 2002년 군산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에서 발견된 여성들의 일기장
중에서

지역과 여성인권, 상생의 공간으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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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에 앞서 화재참사 현장에 붙인 현수막.
ⓒ 전국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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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의 여성의 목숨을 앗아간 군산
개복동 유흥주점은 11년 동안 화재가 난 모습 그대로 방치되었고, 이 지역은 슬럼화 되어 갔다.

참사 이후 군산시와 유가족, 지역
여성단체는 이 공간을 지역과 여성을 위해 의미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협의해 왔다. 그리고 2011년 군산시는 청소년 문화공간 조성을
이유로 경매에 나온 이 건물을 낙찰받는 형식으로 인수했다. 개복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도 여성인권을 위해 쓰여지기 바란다며 재판 종료 후 받은
건물배당금을 군산시에 기부했다.

그런데 군산시는 이 공간의 활용 방안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합의도 하지 않은 채, 건물의 안전성을
이유로 2013년 2월 26일 철거했다. 지역단체와 전국연대는 대안 마련에 대한 합의 없이 건물을 철거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과 아동에게 안전하고 지역주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역사적인
사건으로 후대에 경종을 울릴 만한 공간과 지역, 사물 등을 없애버리는 대신 오히려 살려냄으로써 기억하고, 함께 숨쉬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군산시는 이런 기회를 날려버렸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상과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피해자들은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성매매 현장에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을 모른 척 그냥 허물어 버린다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거나
치유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삶을 삭제하지 않고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다짐하면 현실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전국연대는 지난 2006년부터 매년 9월 민들레순례단을 조직하여 전국 순례를 해왔다. 올해 9월에도
전국의 활동가와 지역사회가 '민들레 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군산개복동, 대명동 일대를 순례하고 추모제 및 캠페인을 진행했다.

한편, 개복동의 의미를 지키고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되길 바라며 2013년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전국연대는 함께
개복동건물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성매매방지법 10년인 올해는 특히, 성매매 공간에서 목숨을 잃은 무수한 여성들을 기리며 그 여성들의
마지막 자리를 잊지 않기 위해 지역 작가와 함께 조형물을 제작하였다.

이 조형물은 당시 척박한 세상을 살아간 이름도 밝히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의 죽음과 성매매 여성들이 겪은 폭력의 역사(창살)를 기억하면서 아픔과 상처를 회복하고 미래를 향해 날아가는 희망(나비)의 내용을
형상화했다. 그러나 지난 9월 23일 개복동 건물이 헐린 자리에 설치 예정이었던 조형물은 주민들의 오해와 반대로 설치되지 못했다.

건물이 사라진다고 역사와 기억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건물은 철거되어 잔디만 무성해졌지만 빠른 시일 내에 군산시와
그동안 함께 이야기 해왔던 '여성인권의 공간(지역사회와 청소년들의 문화공간)' 형태로 새로운 대안 공간이 이 자리에 다시 세워져야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종이학의 염원을 담아,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에 맞서면서 '인권과 평화의 공간'이 새롭게 만들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