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성매매방지법 10주년 연속기획 : 국제적 기준으로 ‘인신매매’ 개념 확대해야

성매매방지법 10주년 연속기획

국제적 기준으로 ‘인신매매’ 개념 확대해야

연예인이 되기 위해 E6 비자로 입국한 뒤 업주의 강요로 공연 대신 ‘주스’를 팔거나,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여권을 빼앗기고 성매매를 강요받아야 하는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성매매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피해자에 대한 보호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성매매특별법에 외국인에 대한 특례 조항이 있긴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수사를 위한 조치 수준이라 순수하게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아닌, 수사에 협조하는 피해자에 한해 강제 출국을 유예시키는 등의 굉장히 소극적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처럼 브로커에게 속아 성매매 피해를 보게 되는 여성들은 ‘성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로 분류해 처벌해야 한다는 게 국제적 흐름이다. 유엔은 2000년 ‘유엔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과 그 ‘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 및 아동의 인신매매·예방·억제·처벌을 위한 의정서(일명 팔레르모의정서)’를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12월 이 의정서에 서명했지만 10년이 넘도록 비준하지 않아 국제적 압박을 받아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3월 이 의정서 비준을 위한 입법조치로서 형법을 개정해 ‘인신매매죄’를 신설했다. 이로 인해 성매매, 성적착취, 장기적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약취·유인과 인신매매 행위뿐만 아니라 약취·유인, 인신매매 등을 위해 사람을 모집, 운송, 전달하는 방조 행위도 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신설된 형법상 ‘인신매매죄’의 개념이 국제적 기준과 달라 인신매매 범죄로 처벌하기 매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성착취적 국제 인신매매 피해 관련 법·제도 및 대책방안’ 연구에서 “행위자에게 성적 착취나 성매매 등의 불법적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엄격한 요건이 있기 때문에 그 행위를 ‘부녀자를 대가를 받고 사실상의 지배를 상대방에게 이전’하는 ‘매매’ 행위로만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행위의 수단에서도 위계·위력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경우와 ‘보수나 혜택의 제공 등’의 수단을 사용한 경우도 처벌 대상이 되도록 구성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시설인 두레방 쉼터의 박수미 소장은 “개정된 형법으로는 지능적으로 발전한 인신매매의 수단들, 속임수나 위력이 아닌 위계에 의해 이주여성들을 유인하는 등의 인신매매는 처벌하기 어렵다”며 “인신매매에 대한 국제적 정의 규정 기준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법 개정 전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은 인신매매 처벌법과 피해자보호법을 함께 발의했고, 남윤인순 의원은 형법 개정 후 피해자보호법을 발의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형법 개정으로 인해 인신매매 처벌법은 더 이상의 논의 자체가 사실상 어려워졌고, 보호법의 경우에도 동력이 약한 상황이다. 형법의 인신매매죄는 처벌을 위한 것으로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률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소관 부처가 불명확하고 여러 부처가 연결돼 있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법이 제정된다면 인권보호를 총괄하는 부처에서 소관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고, 법무부는 기존의 범죄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들어 보호법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남윤인순 의원실 관계자는 “형법 개정으로 처벌법 필요성은 정부에서 느끼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서 보호법을 ‘인신매매 등에 의한 피해자 보호법’이라 정하고 형법에서 말하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사실상의 인신매매까지 포괄해서 보호할 수 있게끔 했다”고 밝혔다. 남윤 의원실 관계자는 “여성가족부가 의지를 가지고 보호법 제정을 추진하되 성매매 외의 강제 노동과 장기 적출 등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관계 부처와 협의를 통해 보호체계를 연계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호법 제정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 김춘진 의원실에서도 “포괄적 인신매매에 대한 정의가 부족하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이 있을 것이고, 법이 시행된 지 1년이라 실질적으로 인신매매를 처벌할 수 있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실효성이 없다면) 다시 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으로 가야 한다는 논란이 제기될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박수미 소장은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것이 관련 기관을 통해 입증된다면 수사나 소송 등의 조건 없이 취업을 전제로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처음 체류하기로 했던 기간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304호 [사회] (2014-09-03)
김수희 / 여성신문 기자 (ksh@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