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고 - 이나영 교수

기고]국제앰네스티, 흔들리는 인권의 촛불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l_2015081901002651500226781.jpg

지난 11일,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 비범죄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합의에 따른 성매매라면 성을 파는 사람뿐 아니라 성구매자, 알선업자 등 관련자들을 모두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성판매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소외된 집단 중 하나이며, 학대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국제앰네스티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법적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성판매자 비범죄화를 요구해 온 성매매 관련 단체들이 늘 주장해 오던 바라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다. 그럼에도 국제앰네스티가 밝힌 입장에서 불명확한 점이 있어 질문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앰네스티는 국가별 다양성과 특수성을 무시한 채 성매매 현상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식민지 지배와 가부장제, 군사주의 문화로 성매매가 창궐했던 국가, 여성의 경제적 참여율이 턱없이 낮고, 여성이란 존재는 단순히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다수인 국가, 여성과 아동이 무참히 성폭행당하고 팔려가는 분쟁지역 국가에서 성매매는 그렇지 않은 국가와 유사한 구조, 지위, 내용, 효과를 지니는가? 국제앰네스티는 그 많은 국가별 차이를 어떤 기준으로 분석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국제앰네스티는 비범죄화가 진정 인신매매를 억제할 수 있다고 믿는가? 비범죄화가 되면 ‘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자율적으로 협력해 인신매매를 규제할 힘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가? 비범죄화를 통해 알선자와 사업주들 간 협력이 더 잘 이루어지고 보다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해 ‘성노동자들’을 통제하거나 착취하며,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다른 조직이나 권력과 협력할 가능성은 왜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 최소한의 죄책감 혹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성구매가 증가할 수 있으며,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은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셋째, 국제앰네스티는 ‘자율적 개인’이라는 이상적 수사에 얽매여 여성주의자들이 그토록 넘어서고자 했던 자발과 강제의 이분법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제적인 성매매와 인신매매, 미성년자 성매매가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 그 강제성은 누가 어떻게 규명하고 판단하며 규제할 수 있단 말인가? 비범죄화가 “성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는 주장이야말로, 불평등한 현실 구조를 외면한 채 개인간 자율적인 상업적 거래행위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온 극단적 (서구, 남성중심적) 자유주의자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결론적으로 필자가 보기에 국제앰네스티의 이번 결정은 ‘성노동자’ 인권침해의 원인을 호도하고, 이들의 인권을 빌미로 성구매자와 알선자들이 그간 행한 인권침해 행위에 면죄부를 주었다.

국제앰네스티가 이번 결정을 기화로 각국에 적극적 권고안을 내고 활동한다면, 성산업과 인신매매 네트워크들은 그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하고 보다 많은 이윤추구를 위해 국가의 경계와 규제를 넘어 가열 차게 전진할 것이다. 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제 겨우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여성폭력의 문제가 인권이라는 수사로 다시 가려지는 역설이다.

성에 대한 성별 이중 기준, 이를 뒷받침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더욱더 심화되는 국가간 경제적, 군사적 차이, 이로 인한 일방적 지배와 정복의 현실이 존재하는 한 성매매는 성적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이거나 착취, 인권침해의 장이다.

이를 명확히 인식하지 않는다면, 국제앰네스티가 밝힌 인권의 촛불은 스스로에 의해 꺼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