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수요를 전제한 성매매 논의는 인권을 지울 뿐이다
최근 한 남자 연예인이 개인 SNS에 올린 성매매 합법화 취지 글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교회 앞에, 학교 앞에, 파출소 앞에 있는 유흥가를 보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성산업이 우리의 일상 공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보며 의문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늘 이상하게도 이 의문은 항상 ‘왜 여성의 몸이 상품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이 산업을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가’로 흘러간다.
왜 ‘관리’의 대상은 성구매 문화, 즉 수요가 아니라 여성의 몸이 되는가?
왜 이 전제는 늘 ‘수요는 어쩔 수 없다’인가?
성매매는 어차피 사라지지 않으며, 인정하고 관리해 세금을 걷고 위생을 관리하자는 이야기는 일견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구매 수요를 전제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1인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을 방치한 이상 덮어두면 그만이지라는 논리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말은 곧 남성의 성적 욕구는 당연한 것이니 사회가 해결해줘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는 여성의 몸이 제시된다.
이미 성매매가 합법화되었거나, 비범죄화인 상황인 국가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준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위해 여성의 몸이 제시되는 것이 당연해질 때, 가장 취약한 위치의 여성들은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될 수 밖에 없다. 이주여성, 빈곤 여성들은 ‘왜 살기 위해 성매매를 하지 않느냐’는 압박을 받는다. 국가는 이들에게 세금만 걷을 뿐,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결과적으로 더 낮은 가격, 더 위험한 조건, 더 강한 통제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관리’는 착취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단지 시장화할 뿐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도, 성매매에 대한 수요도 정책, 문화, 법제도, 교육에 따라 충분히 달라진다. 부부 사이의 강간은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서, 이제 우리는 혼인 관계 안에서도 동의 없는 성관계는 폭력이며,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폭력 또한 범죄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또한 성관계에서 ‘명시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이제 낯설지 않다. ‘싫다는 말이 없었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 성적 대상화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는 ‘사소한 일’로 취급되던 것들이 지금은 분명한 여성폭력으로 인식되며, 처벌 받는다.
사회는 분명히 변화해왔다. 이 모든 변화는 남성의 욕구는 통제 불가능한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법,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전제 위에 가능한 변화였다.
성매매는 사라질 수 있다. 수요를 줄이는 정책, 구매자 처벌 강화, 탈성매매 지원 확대, 주거·노동·복지 기반 강화가 성매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나라의 사례로 증명되어 왔다.
욕구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를 통제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폭력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바꾸는 것. 우리는 이미 그런 변화를 만들어왔다.
성매매를 둘러싼 논의가 ‘남성 1인 가구가 늘어났으니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여성의 몸이 남성의 욕구 해소를 위한 해결책으로 전제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논의가 한국 사회에서 유흥문화와 성매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넘어, 성매매가 만드는 성별불평등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성매매 없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를 함께 묻고 토론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2월 20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논평] 수요를 전제한 성매매 논의는 인권을 지울 뿐이다
최근 한 남자 연예인이 개인 SNS에 올린 성매매 합법화 취지 글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교회 앞에, 학교 앞에, 파출소 앞에 있는 유흥가를 보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성산업이 우리의 일상 공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보며 의문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늘 이상하게도 이 의문은 항상 ‘왜 여성의 몸이 상품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이 산업을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가’로 흘러간다.
왜 ‘관리’의 대상은 성구매 문화, 즉 수요가 아니라 여성의 몸이 되는가?
왜 이 전제는 늘 ‘수요는 어쩔 수 없다’인가?
성매매는 어차피 사라지지 않으며, 인정하고 관리해 세금을 걷고 위생을 관리하자는 이야기는 일견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구매 수요를 전제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1인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을 방치한 이상 덮어두면 그만이지라는 논리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말은 곧 남성의 성적 욕구는 당연한 것이니 사회가 해결해줘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는 여성의 몸이 제시된다.
이미 성매매가 합법화되었거나, 비범죄화인 상황인 국가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준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위해 여성의 몸이 제시되는 것이 당연해질 때, 가장 취약한 위치의 여성들은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될 수 밖에 없다. 이주여성, 빈곤 여성들은 ‘왜 살기 위해 성매매를 하지 않느냐’는 압박을 받는다. 국가는 이들에게 세금만 걷을 뿐,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결과적으로 더 낮은 가격, 더 위험한 조건, 더 강한 통제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관리’는 착취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단지 시장화할 뿐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도, 성매매에 대한 수요도 정책, 문화, 법제도, 교육에 따라 충분히 달라진다. 부부 사이의 강간은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서, 이제 우리는 혼인 관계 안에서도 동의 없는 성관계는 폭력이며,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폭력 또한 범죄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또한 성관계에서 ‘명시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이제 낯설지 않다. ‘싫다는 말이 없었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 성적 대상화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는 ‘사소한 일’로 취급되던 것들이 지금은 분명한 여성폭력으로 인식되며, 처벌 받는다.
사회는 분명히 변화해왔다. 이 모든 변화는 남성의 욕구는 통제 불가능한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법,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전제 위에 가능한 변화였다.
성매매는 사라질 수 있다. 수요를 줄이는 정책, 구매자 처벌 강화, 탈성매매 지원 확대, 주거·노동·복지 기반 강화가 성매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나라의 사례로 증명되어 왔다.
욕구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를 통제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폭력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바꾸는 것. 우리는 이미 그런 변화를 만들어왔다.
성매매를 둘러싼 논의가 ‘남성 1인 가구가 늘어났으니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여성의 몸이 남성의 욕구 해소를 위한 해결책으로 전제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논의가 한국 사회에서 유흥문화와 성매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넘어, 성매매가 만드는 성별불평등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성매매 없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를 함께 묻고 토론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2월 20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