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후기

반성매매액션 크랙 활동가 김주정은

3월 10일은 두 번째 아웃리치가 있는 날이었다. 아웃리치를 일주일 앞두고부터 미아리 집결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천막 안의 이모들, 좁고 어두운 골목길,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던 핑크빛 조명.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서있는 아파트와 ‘뉴타운’이라는 표지는 자꾸 집결지의 분위기를 과장시킨다. 그 공간은 뭘까? 다들 알고 있는 걸까? 아는데 모르는 척, 그렇게 시치미를 떼며 살아가는 걸까? 일주일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미아리 집결지의 모습이 날 덮쳐오며 “너는 알잖아”라고 멱살을 잡는 것 같았다. 아웃리치 날짜가 다가올수록 무서워졌다. 집결지의 모습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게, 막연히 무서웠다. 또 그걸 무서워하는 내 모습에 부끄럽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어떤 날은 집결지의 모습에, 또 어떤 날은 작아진 내 모습에 뒤척이며 일주일을 보냈다.

3월 10일이 왔다. 아웃리치를 나가기 전 센터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상하리만치 거대했던 감정에 대해 말해 보았다. 제대로 말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말해보고 싶었다. 무서워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한심하기도 했지만 그 무서움을 발음하고, 인정하고 싶었다. 그래야 그 무서움을 데리고 어디든 가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아웃리치를 나갔을 때는 내게 무서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었다. 여전히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두 번째 아웃리치여서 그런지 첫 번째 아웃리치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중간 중간에 ATM 기기가 정말 많았는데, 첫 번째 아웃리치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아웃리치를 마치고 나서야 무서움이 생각났다. ‘어, 나 오기 전에는 엄청 무서웠는데!’ 생각해보면 첫 번째 아웃리치 이후 나는 미아리 집결지의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당했던 것 같다.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분위기에 압도당할 수밖에. 그리곤 막연히 그 분위기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두 번째 아웃리치에서 집결지를 다시 마주하고, 아주 조금이지만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되면서 확실히 그 무서움은 작아진 것 같다. 앞으로는 내 안의 무서움에 대해서 조금 더 꼼꼼히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아웃리치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두 번째 아웃리치에서 (확인 가능한) 문을 연 업소는 한 군데도 없었다. 언니들에 대해 물어볼 때면 이모들은 입을 모아 “아직 출근 안 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순진하게 그 모든 것들을 믿었다. 그 날은 헌법재판소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내려진 날이기도 했다. 나는 다들 신나서 술을 마시느라 아직 안 왔구나, 그래서 언니들도 더 늦게 출근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활동가 선생님들은 오히려 그래서 더 일찍 영업을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이미 영업을 시작해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언니들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탄핵 선고로 신난 사람들이 더 일찍, 더 많이 집결지를 향한다니. 지금, 여기의 ‘축제’는 어떤 의미인 걸까? 누군가 축제를 신나게 즐길 동안, 누군가는 그 축제를 더욱 신나게 만들어줘야 한다. 언니들에게 탄핵일은 어떤 날이었을까?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았다. 자꾸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중얼거렸고,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역을 서서 왔다. 지하철 역을 나와 집에 가는 길에도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너무 많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어야 했다. 다시 한 번 그 질문을 떠올려야 했다. 지금, 여기의 ‘축제’는 어떤 의미인 걸까? 도대체 누구에게 ‘축제’인 걸까? 축제의 하루를 만끽하는 카톡 목록과 타임라인 사이에서 나는 우울해졌다. 신나지 않았던, 신날 수 없었던 하루였다. 내게 3월 10일은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